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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연기→철회… 엄마도 아이도 한유총에 시달린 하루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개학 연기 투쟁’을 벌인 4일 오전 교육청 직원이 개학 연기에 대해 서울 도봉구의 한 유치원 출입문에 시정명령서를 붙이고 있다. 서영희 기자


“여보, 아직 애 유치원에서 연락 안 왔지?”

대전 중구에 사는 박모(36)씨 부부는 4일 아침 출근 직전까지 휴대전화를 붙잡고 진땀을 흘렸다. 다섯 살 난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에 합류했는데, 전날 밤까지도 자체 돌봄 서비스 제공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인 이들은 교육청에 ‘긴급돌봄 서비스라도 제공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유치원으로부터 개학 연기 보고를 받지 않아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만 들었다.

박씨는 “아침에야 유치원이 자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며 “유치원에 항의하자 ‘원하면 해주겠다’고 했지만 도저히 못 미더워서 아이 아빠가 연차를 내고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휴 내내 교육청과 유치원에 셀 수 없이 전화를 하면서 아주 신물이 났다. 더 이상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아이 아빠가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 당일 학부모와 유아들의 혼란이 이어졌다. 우려했던 ‘보육 대란’은 없었지만 개학 연기가 기습 통보·철회되면서 학부모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3일 저녁부터 이날 오전까지 경기도 용인교육지원청에는 ‘도대체 아이를 어디로 보내라는 거냐’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용인은 한유총의 영향력이 커 개학 연기 유치원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 그러나 개학 전날 밤늦게 사립 유치원 다수가 개학 연기를 철회하거나 자체 돌봄을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교육지원청은 공립유치원 등에서 아이를 돌보기로 한 ‘긴급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등원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아이를 데려다줄 곳이 또 바뀌면서 학부모들은 갈팡질팡했다. 용인 수지구의 한 유치원에 자녀를 등원시킨 서모(38)씨는 “개학을 연기한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놀랐는데 주말에 다시 정상등원하라는 문자를 받았다”며 “이렇게까지 하면서 남에게 애를 맡겨야 하나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다른 학부모도 “유치원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연락왔지만 개학 연기 투쟁에 참여하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아 교육청에 문의했다”며 “그러나 담당자가 안전문제를 언급하며 ‘그냥 기존 유치원에 보내라’고 하더라. 책임지기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전날 밤 기습적으로 개학 연기를 통보받은 학부모들은 타격이 더 컸다. 울산교육청이 지난 2일 발표한 개학 연기 유치원 수는 ‘0’곳이었지만 전날 오후 11시에는 4곳으로 늘었다. 울산 맘카페에는 ‘일부 유치원이 10시가 넘는 시간에 기습적으로 개학 연기를 통보하고 있다’ ‘당장 내일 출근인데 긴급 돌봄 서비스를 사전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냐’는 글들이 올라왔다. 울산 울주군에 사는 A씨(40)는 “문제가 된 유치원 4곳 모두 개학 당일 오전에 개학 연기를 철회했다. 그러나 밤에 개학 연기를 통보를 받은 학부모들은 그야말로 ‘카오스’ 상태였다”고 말했다.

예정대로 자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 유치원의 경우에도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백발 할머니가 직접 운전해 손자들을 등원시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침 일찍 손자 두 명의 손을 잡고 서울 강남구의 한 사립유치원을 찾은 그는 “자녀가 맞벌이 부부라서 할 수 없이 내가 애들을 데리고 왔다. 이번 사태가 야속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부 유치원은 급식을 제공하지 않아 도시락통을 들고 있는 학부모들도 보였다.

전날 오후 10시에 자녀의 유치원이 개학 연기를 철회했다는 사실을 안 백모(37)씨는 “개학 연기 사실도, 연기 철회 사실도 기사를 통해 직접 교육청 홈피를 찾아 알았다”며 “사립유치원이 아이를 볼모로 원하는 걸 요구하는 일은 매년 일어나는데 왜 매번 당하냐. 학부모와 아이만 피해를 본다”고 호소했다. 자체 돌봄 서비스만 제공하는 유치원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안 그래도 유치원을 처음 보내서 적응을 잘 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설상가상”이라며 “지금은 제대로 교육이 진행되지 않는 건데 나중에 환경이 바뀌면 아이들은 적응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안규영 이재연 기자, 용인=구승은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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