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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두 정상, 현안별 1·2·3案 수싸움… ‘톱다운 방식’ 부담 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회담장인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 합의 결렬 뒤 헤어지면서 인사하고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인스타그램 캡처


정상들이라도 이처럼 큰 결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부담이 컸다. 실무협상에서 확실한 합의 없이 시작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양 정상은 실무진이 보고한 현안별 복수의 대응 방안을 들고, 우선순위만 정한 채 협상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와 상황 인식을 두 번의 회담만으로 모두 타결짓는 것은 독재체제인 북한도, 세계의 경찰인 미국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2년간 밀어붙였던 ‘톱다운’(정상들 간 담판) 방식의 외교가 처음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비핵화 협상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미 협상에 정통한 핵심 외교 소식통은 28일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이 정답을 갖고 임한 부분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실무진은 현안별로 1안, 2안, 3안 등 복수의 안을 보고했고 양 정상은 여러 안을 직접 맞춰보며 타결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남북 경제협력을 예로 들면 실무진은 1안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2안 금강산 관광 우선 재개, 3안 조건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제시했고 정상이 담판을 벌이면서 최종안을 결정하게 했다는 의미다. 실무협상에서 현안별 합의를 보지 못하다보니 정치적 결단에 대한 부담이 정상들에게 대부분 전가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 큰’ 결단력을 감안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대타협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협상 결렬은) 나 혼자만의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이번 판단이 참모진과의 논의 결과임을 밝혔다.

하노이 담판의 결렬은 지난 2년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이끌어온 톱다운 정상외교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남·북·미 정상은 실무협상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직접 나서 협상의 물꼬를 터 왔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회담 취소를 발표한 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5월 26일 판문점에서 비공개 회담을 갖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양측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찾아가 분위기를 다시 띄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2차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 내부의 반발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도 이미 공개된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로 전면적인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보여 기존의 논리를 뒤집지는 못했다.

문 대통령이 다시 한·미 및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 중재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느 한쪽이 대폭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내부 컨센서스를 확립하지 않고는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중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중재안이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마땅한 중재안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던 지난해 5월 24일로 원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부터는 실무협상에서부터 차근차근 이견을 좁혀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양 정상이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연계해 제재 해제 또는 완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점은 북·미 간 논의의 단계가 한층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정부는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해나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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