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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패키지 여행’을 밀어낸 워라밸 시대의 변화하는 휴가 트렌드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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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5일 사용, 주말 포함해 1주일간 휴가를 다녀오겠습니다.’

한국 직장인의 전형적인 근태계 내용이다. 적게는 15일, 많게는 29일의 연차휴가를 쓰기 위해 반드시 회사에 제출하는 서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에서 1주일 이상 자신의 자리를 비운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워라밸’(일과 삶을 뜻하는 work-life와 균형을 뜻하는 balance의 합성어)이 대세인 요즘 직장인의 휴가 풍경은 확 달라졌다. 2주짜리 휴가원을 내고, 회사도 선뜻 이를 수락한다. 14일 정도면 맘 먹고 해보고 싶은 취미나 가족과의 특별한 여행을 즐겨도 충분한 시간이다. 연차와 법이 보장한 주5일 40시간 근무의 혜택을 잘 이용하면 일에 얽매여 삶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샐러리맨들도 자신을 위한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특별한 휴가, 서핑 캠핑 드라이빙….

30대 중반의 직장인 A씨는 취미는 서핑이다. 해안가로 달려가 서핑보드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 말이다. 세 살 아래인 아내도 5년 전 서핑 동호회에서 만났다. 1960년대 록밴드 비치보이스의 ‘서핀 USA’란 노래를 필두로 유행하기 시작한 익스트림스포츠의 한 종류다. 파도가 거세고 사계절 날씨가 연중 온화한 미국 캘리포니아 인근 해안이 고향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서핑이 취미인 사람은 희귀종에 속했다. 3면이 바다인 한국이지만 서핑을 할 수 있는 해안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해는 해안 모래사장을 몇 미터만 벗어나도 너무 가파르게 깊어져 서퍼(surfer)들에겐 지옥이었고, 서해는 너무 완만해 탈 만한 파도가 일지 않는다.

그런데 2010년을 전후로 서핑족이 우리나라 해안 곳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서핑 명소가 하나둘 생겨났고, 동호회도 만들어졌다. 보드 하나만 있으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스피드와 스릴 때문이었다. 비교적 비용도 저렴하니 경제적 부담도 많지 않다. 강원도 양양, 제주도 사계해수욕장 부근, 부산 송정해수욕장 등지에는 혹한의 겨울을 제외하면 서핑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A씨는 오는 4월 초 ‘서핑 휴가 14일’을 계획하고 있다. “제주도 사계해수욕장 쪽으로 갈 건데 그때가 제일 좋습니다.” 4월이면 여전히 바람이 많이 불어 이곳 파도가 높게 일고 성수기가 아니라 숙박이나 렌터카도 저렴하며, 여름철 몰리는 해수욕 관광객 인파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제주 왕복 비행기표는 이미 평일 출발, 평일 도착으로 7만원에 끊어놨다.

자동차 서키트 휴가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강원도 인제와 전남 영암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전문 자동차 드라이빙 서키트 행사가 연중 활발하다. 일반 승용차를 개조해 경주용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자동차 경주 교육을 하고 서키트를 시속 150~230㎞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하는 행사들이다. 비교적 젊은 남성들이 주를 이루지만 40대 스피드족도 눈에 띈다. B씨(41)는 “1년에 한 번은 인제로 여행 와서 가족들은 온천욕 스키를 즐기고 저는 서키트로 달려간다”면서 “일반 도로에선 꺼내볼 수도 없는 내 안의 질주 본능을 여기선 마음껏 펼쳐볼 수 있다”고 했다.

직접 텐트를 치고 취사를 해결하는 캠핑은 이미 오래전부터 휴가의 대세 중 하나였다. 캠핑카를 빌려 자신의 차에 매달고 전국 곳곳의 오토캠핑장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중년 휴가족들은 골프 등산 등의 취미를 위해 투어에 나서는 경우도 상당하다. 추운 날씨에 국내 골프장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겨울에는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지의 골프투어가 성행한다. 항공료가 비싸지고 현지 숙소 가격이 한국·일본·중국인 골프 관광객들로 인해 급등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정기편을 운행하지 않는 항공사들이 이때만 되면 전세기를 띄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방콕’과 패키지 여행은 가라

방에 콕 처박혀 휴가를 보내는 일은 얼마 전까지 싱글족들에게 다반사였다. 갑작스레 낸 휴가에 특별히 계획해놓은 일도 없고 여행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여행을 간다 해도 패키지 투어가 대부분이었다. 힘들이지 않고 관광을 할 수 있고 숙박이나 먹거리도 여행사에서 다 알아서 해주니 속편한 일이어서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휴가는 이렇지 않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편도 최소 6개월 전 예약한다. 숙박도 국내·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편안한 곳으로 스스로 예약하고, 관광도 배낭여행처럼 스스로 찾는다. 해외여행은 이들에게 ‘테마여행’ 형태로 이뤄진다. 혼자 또는 친구들과 휴가 일정을 맞춰 여행의 테마를 찾아 공유한다. 박물관 투어, 먹방 투어, 쇼핑 투어, 공연 투어, 풀빌라 투어…. 테마에 따라 해외 또는 국내 여행지를 결정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휴가 트렌드가 바뀌자 여행사들도 속속 ‘혼자 투어’ ‘자유일정 투어’ 상품을 내놓고 있다. 테마에 맞춰 혼자 또는 두 명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조인해주는 프로그램도 성행하고 있다. 직장인 C씨(32·여)는 “휴가 일정을 친구끼리 맞추기 힘든데 같은 관심사를 가진 동성 여행객을 조인하면 아무래도 숙소 예약이나 여러 가지 비용이 적게 든다”고 했다.

호텔 아닌 ‘버케이션(vacation)하우스’

휴가를 떠나면 으레 숙소를 먼저 찾기 마련이다. 잠자리가 편해야 나머지 여행도 즐겁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1의 후보지는 호텔이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아늑한 숙소를 정하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호텔이 아니라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버케이션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도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 경우다. 대여섯명의 가족이 머물기 적당하고 1인당 비용을 받는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거실과 주방 등을 갖춰 여행지에서 외식하지 않아도 집에서 집밥을 먹는 것처럼 취사할 수도 있다. 싱글족들도 일정을 맞추면 호텔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다. 휴가철이 아닌 비수기에는 호텔보다 훨씬 싼 값에 집을 빌릴 수도 있다. 국내에는 시설 좋고 가격이 합리적인 버케인션하우스 펜션들이 연합해 스마트폰 앱을 만들어 숙소 예약을 받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해외여행으로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은 국내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라 현지 사이트나 앱을 통해 훨씬 더 저렴하게 숙소를 예약하는 트렌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여행 숙소 항공 예약 사이트는 ‘프라이스라인(Priceline)’이 대표적이다. 유휴기 미국 관광지 숙박시설들이 매우 싼 값에 방을 빌려주는 점에 착안해 미국 전역의 숙소를 경매 형식으로 예약해준다.

휴가를 집 근처 호텔에서 보내는 싱글족도 많다. 갑작스레 휴가를 얻어 특별히 여행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호텔을 예약해 먹고 자고 노는 것이다. 국내 호텔들은 친구들끼리 혹은 가족 단위로 오는 ‘호텔 휴가족’을 위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평소보다 훨씬 저렴한 레스토랑 메뉴를 개발하고 이들만을 위한 휴식공간, 식당 등을 마련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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