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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오퍼튜니티 수고했어” 15년 만에 화성서 잠들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 담당자가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열린 화성탐사선 오퍼튜니티의 임무 종료 기자회견에서 탐사선 모형을 가리키고 있다. 높이 150㎝, 무게 185㎏의 오퍼튜니티는 6개의 바퀴로 최대 32도에 달하는 가파른 경사를 타넘으며 15년간 화성 표면을 탐사했다. AP뉴시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12일 밤(현지시간) 화성탐사선 ‘오퍼튜니티(Opportunity)’와 교신을 시도했다. 이미 1000차례 넘게 신호를 보냈지만 답신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오퍼튜니티는 이날 마지막 교신에도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나사는 다음 날인 13일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퍼튜니티의 임무 종료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JPL의 화성탐사 프로젝트 책임자 존 칼라스 박사는 “오퍼튜니티호를 되살리기 위해 모든 공학적 노력을 다했으나 신호를 받을 가능성이 너무 낮아 더는 시도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토마스 주부큰 나사 과학담당 부국장은 “이 자리에서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오퍼튜니티의 임무가 완수됐음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오퍼튜니티는 인류가 화성과 달에 보낸 탐사선 중 가장 오래 활동했다. 활동기간은 15년에 달한다. 파손될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극복하며 화성 표면을 탐사했다. 나사 직원들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오퍼튜니티에 ‘오피(Oppy)’라는 애칭까지 붙였다. 그리고 오퍼튜니티가 활동을 끝내자 동료가 죽은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오퍼튜니티는 2003년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돼 2004년 1월 24일 화성 메리디아니 플래넘 지역에 착륙했다.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쌍둥이 화성탐사선 ‘스피릿(Spirit)’이 화성 반대편 구세브 분화구에 도착한 지 20일 만이었다.

애초 나사는 탐사선의 태양전지판에 화성의 먼지가 쌓여 긴 시간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예상 수명은 90일이었고 이동 거리도 1000m 남짓이었다. 하지만 오퍼튜니티는 예상을 깨고 예상 수명의 60배가 넘는 15년간 활동했다.

비결은 화성의 강한 바람이었다. 초속 4m에 달하는 강한 바람이 태양전지판 위에 쌓인 미세먼지를 주기적으로 쓸어냈다. 태양전지판으로 동력을 확보한 오퍼튜니티는 화성의 혹독한 밤 추위도 견뎌냈다. 오퍼튜니티는 밤이면 자체 난방시스템을 가동해 추위에 약한 기계장치를 보호했다. 영하 14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도 태양이 있는 북쪽으로 태양광 패널을 조정해가며 버텼다.

오퍼튜니티가 화성 표면을 탐사한 거리는 45㎞에 이른다. 360도 컬러 파노라마 사진 15장을 포함해 21만7000여장의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다. 스피릿도 고군분투했다. 7㎞를 이동하며 12만4000여장의 사진을 지구로 보냈다. 하지만 스피릿은 2011년 5월 모래에 빠진 뒤 결국 교신이 끊어졌다.

두 화성탐사선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물에서 만들어지는 광물을 찾아내고, 과거 연못이나 호수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발견해냈다.

오퍼튜니티는 지난해 6월 10일 화성 전체를 휘감는 강력한 모래바람을 피해 ‘인내의 계곡(Perseverance Valley)’ 지역으로 이동했다. 모래바람은 3개월 만에 그쳤지만 오퍼튜니티는 깨어나지 않았다. 태양광 패널에 먼지가 가득 쌓여 동력이 충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사는 45일간 신호를 보낸 뒤 응답이 없으면 포기할 계획이었다. 미국 내에서 화성의 강한 바람이 다시 한번 오퍼튜니티를 구할지 모른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나사는 이후 8개월간 오퍼튜니티와 교신을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칼라스 박사는 오퍼튜니티와 작별하는 심정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그리워하는 것 같다”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계속 품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런 희망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짐 브라이든스틴 나사 국장은 “우리의 용감한 우주인들이 화성 표면을 걷게 될 날이 다가오게 된 것은 오퍼튜니티호 같은 개척적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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