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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 미꾸라지가 행복한 나라… 기준점은 월 100만원





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계층이동 사다리가 이미 붕괴됐다는 인식의 확산으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제 실현 불가능한 ‘신화’로 굳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했던 인사들은 이 같은 세태를 꼬집으면서 ‘개천에서 용이 되지 않아도 행복한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만 19세 이상 일반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행복지표 개발 연구’에서 응답자 4명 중 1명은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거나 불안하다’고 답했다. 행복감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소득, 고용, 주거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서울을 고소득자가 많은 강남·서초·송파 3구와 그 외 지역으로 나눴을 때 비(非)강남 지역 거주자의 현재 행복감은 강남 3구 거주자보다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항상 하위권이다.

행복감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불평등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심한 건 아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의외로 북유럽 대표 복지국가인 스웨덴과 비슷하다. 불평등 자체는 산업구조 전환과 같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사안이다.

나라별 차이는 최저 수준의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해주느냐에 있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서 ‘불안전 상태’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은 지난달 보사연 월간물 ‘보건복지포럼’에 실은 ‘소득보장 정책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서 “서구 선진 복지국가는 우리나라보다 의료 보장과 교육 보장, 사회서비스 보장 수준이 좀 더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月 100만원, 저소득층엔 ‘그림의 떡’

정부는 최근에서야 최저 수준 소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최저 노후소득 수준 정책 목표를 월 100만원으로 제시했다. 처음으로 최소 생활비를 제시했다는 점과 그 금액이 연금 선진국과 비슷하다는 점에선 의의가 있다.

문제는 중·고소득 장기 가입자만 월 100만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규직으로 25년 넘게 일하며 많은 보험료를 내야 65세 이후에 연금 100만원을 받는다. 비정규직이어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고 월급이 적어 보험료를 많이 못 낸 저소득·단기 가입자에게 월 100만원은 불가능한 수치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장은 “이들에 대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럽에선 ‘최저보장연금’ 제도를 도입하는 게 대세다. 다른 공적 연금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것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가 이미 도입했고 독일이 유사 제도를 마련할 예정이다. 핀란드에선 이 금액만 월 100만원에 육박한다. 윤석명 보사연 연구위원은 10일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유럽의 최저보장연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연금의 사각지대를 채우는 데 있어서도 참고할 점이 많다. 독일의 경우 2002년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기초보장 제도를 시작한 데 이어 산모를 위한 출산연금 정책을 시행했다. 자영업자가 파산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사적 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연금 가입 기간을 늘려주거나 연금보험료를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지만 역부족이다. 출산으로 가입 기간에 공백기가 생기는 걸 메워주는 출산크레딧은 둘째 아이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이를 첫째 아이부터 적용토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혜택받는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농어업인과 사업장 종사 근로자, 실직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은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납부예외·장기체납자 비중이 큰 자영업자는 대상이 아니다. 특수고용직도 직장가입자처럼 국민연금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작다.

청년 빈곤율 심각한데 예산 삭감

청년의 최저 수준 소득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의 현실 인식은 안이해 보인다.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최근 ‘헬조선’ 발언은 가뜩이나 절망에 빠진 청년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18~25세에 해당하는 이른바 ‘미래세대’의 빈곤율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관련 예산은 대거 삭감됐다. 보사연에 따르면 하위 10% 저소득층 구성에서 35세 이하 가구주 가구는 2017년 1분기 3.0%에서 1년 만에 5.3%로 늘었다. 지난해 8월 청년실업률은 10.0%를 기록하며 1999년 8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그런데도 국회는 취업성공패키지와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 올해 청년 일자리 관련 예산을 1조6000억원 넘게 삭감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청년은 그나마 다행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직장에서 퇴사한 경우여서다. 고용보험 미적용 직장에서 실직하거나 아예 취업한 적 없는 청년은 실업급여마저 받지 못한다.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청년수당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있어도 그 기간이 직전 18개월간 180일 이상이어야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가 된다. 단기계약직과 같은 일자리를 전전하느라 이 기간을 채우지 못해 실업급여를 못 받는 청년도 많다.

덴마크, 최대 90%까지 실업급여

다른 나라는 고용보험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강해 청년들이 직장을 잃어도 일정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본은 2010년 비정규직 고용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조건을 종전 ‘6개월 이상 고용이 예상되는 노동자’에서 ‘한 달 이상 고용이 예상되는 노동자’로 완화했다. 단기간 근무하는 비정규 노동자에게도 실업수당이 지급되도록 관련 규정을 함께 변경했다. 일본의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는 더 많은 근로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덴마크는 고용보호 수준이 낮은 대신 실업급여 지원 수준이 높은 ‘유연안전성’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덴마크 실업보험은 가입 기간이 1년 이상이고 최근 3년간 52주 동안 일한 경험이 있으면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준다.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은 평균 67%이며 최저임금을 받던 사람은 실업급여를 통해 기존 임금의 90%까지 보전받을 수 있다. 취업 경험이 없는 졸업생도 취업 의사를 고용 담당 기관에 알리면 실업급여 수급권이 생긴다. 자격 미달로 실업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은 복지급여를 수령한다.

실업급여 지원이 상대적으로 관대한 만큼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장치도 마련했다. 모든 실업자는 직장을 잃은 뒤 4주 안에 자신의 이력서를 제출해야 한다. 고용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고 사회복지사와 정기 미팅을 해야 한다. 이런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급여 지급이 최장 3주 중단된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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