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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싸워달라” 당부 남기고… 영웅이라 불리던 김복동 할머니 영면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장례식은 31일까지 시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다음달 1일이다. 이병주 기자


하얀 국화로 둘러싸인 영정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보랏빛 한복을 차려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애써 담담한 얼굴로 빈소에 들어선 조문객들은 그 미소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세요.” 시민들의 바람이 방명록을 빼곡히 채웠다. 일본의 사죄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김 할머니는 “끝까지 싸워 달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김 할머니 빈소는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이날부터 사흘간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이 예정된 다음달 1일에는 그의 시신을 태운 운구차가 서울광장과 일본대사관 앞을 거쳐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간다.

김 할머니의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1992년 공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전 세계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평생을 싸웠다. “내가 힘들기에 다른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며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게 “나도 피해를 입었지만 한국 국민으로서 사과드린다”고 사죄하기도 했다.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그의 통장에 마지막 남은 돈은 160만원이었다고 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그를 ‘영웅’으로 기억했다. 휠체어를 탄 길원옥 할머니는 김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란색 조끼를 입고 빈소를 찾았다. 그는 방명록에 “뚜벅뚜벅 걸으신 평화인권운동의 길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평화를 위한 한 영웅의 발걸음”이라고 썼다. 이용수 할머니도 “27년이나 일본대사관 앞에서 얼마나 외치셨느냐. 같이 사죄받아야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마지막 순간에도 ‘재일조선학교를 계속 지원해 달라. 끝까지 싸워 달라’고 하셨다”며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분노하셨다”고 전했다.

황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어머니를 잃은 기분”이라고 했다. 아침 일찍 전주에서 올라온 김판수(80)씨는 할머니에게 절을 5번 올렸다고 했다. 그는 “성인에게 절을 3~4번 올리는데 할머니는 그 어떤 성인보다도 참된, 살아있는 성인이라는 의미에서 더 많이 했다”고 말했다. 15년째 수요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임계재(66)씨도 소식을 듣자마자 빈소로 달려왔다. 그는 “부모님을 잃은 것처럼 서럽다”며 “일본대사관을 향해 ‘일왕은 들으라’고 호통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들은 김 할머니에게 되레 위로를 받은 적이 많다고 회상했다. 일산동고에 다니는 김지윤(18)양은 “수요 시위에 가면 할머니가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하셨었다. 그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고 말했다. 박동인(49)씨도 “저희를 아들, 딸처럼 대해주셨다”고 했다.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영화 ‘아이캔스피크’에 출연한 배우 나문희씨 등도 다녀갔다. 문 대통령은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서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것”이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재연 박세환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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