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기생 제도가 빙상계 불미스러운 사건 원인”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에서 열린 빙상계 성폭력 관련 기자회견에 나서 체육계 성폭력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여준형(35) 젊은빙상인연대(젊빙연) 대표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폭로 이후 유명해졌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 빙상계 내부를 잘 아는 여 대표는 심 선수의 폭로 이후 꾸준히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그런 여 대표를 28일 서울 여의도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일련의 사태에도 아직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며 “정부에서도 관심 갖고 제도 개선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참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여 대표는 빙상계에서 거듭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특기생 제도’를 꼽았다. 그는 “입시 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특기생 제도가 가장 큰 문제”라며 “대학 진학에 모두가 매달리니 선수들과 학부모들이 폭행이나 혹사 등을 암묵적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제도가 살아 있는 한 빙상계의 체질 개선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중 배운 것도 이야기했다. 미국에서도 10대 선수들을 대표팀에 뽑아 훈련을 하는데 그 선수들이 어느 날 훈련에 안 나오더란다. 아직 몸이 완전히 성장치 않은 선수들이 전체 훈련을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해 제외시킨 것이다. 여 대표는 “이렇게 천천히 올라온 선수들이 어릴 때는 한국 선수들보다 부족하지만 성인이 되면 기량이 비슷해지고 수명도 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이렇게 하고 싶겠지만 제도적 문제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여 대표는 심 선수가 ‘제2의 노진규’라고 했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인 노진규는 2016년 부상 치료 중 골육종으로 사망했다. 여 대표는 “선수 보호를 해주는 것이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대학의 역할”이라며 “선수가 보호받지 못하니 노진규나 심석희 같은 피해자들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여 대표는 최근 흘러나온 빙상연맹 해체설에 관련해선 “선량한 코치와 선수들도 많다. 연맹을 해체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다시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다만 빙상계 ‘적폐’로 지목된 전명규 한국체육대 교수에 대해선 사퇴 요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책임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전 교수가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도 그중 하나”라며 “적어도 후임자는 행동을 조심할 것이며 그에 대한 감시는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 대표는 젊빙연의 향후 계획에 대해 “새로운 연맹 집행부가 출범해도 견제자 역할을 계속 수행하려 한다”며 “견제는 방해가 아니라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 대표는 끝으로 “나를 포함해 윗세대로부터 안 좋은 걸 보고 배운 우리 세대 코치들은 모두 문제가 있다”며 “적어도 아래 세대에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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