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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주장으로 증거인멸 우려 키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패착

사진=권현구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전략을 잘못 세운 탓에 구속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측과 ‘법리 대결’을 하기보다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를 “조작됐다”거나 “왜곡된 진술”이라고 폄훼하는 데 몰두해 증거 인멸의 우려를 키웠다는 것이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오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그 사유로 ‘증거 인멸의 우려’를 들었다. 그는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와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 원칙이지만 진술 태도를 볼 때 ‘사법농단 의혹’ 관계자들과 입을 맞춰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해 8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으로부터 임의제출 형식으로 업무수첩 3권을 확보했다. 수첩 곳곳에는 ‘대법원장’을 의미하는 한자 ‘大’자가 세부지시 사항과 함께 적혀 있었다. 이 수첩들은 국정농단 사건의 ‘안종범 수첩’처럼 ‘스모킹건’으로 지목돼 왔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한상호 변호사가 양 전 대법원장과 독대해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세부계획을 3차례 논의했다고 진술한 내용도 핵심 증거로 제시됐다. 검찰은 독대 사실을 입증할 문건을 김앤장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심사에서 “(이 전 양형실장이) 뒤늦게 업무수첩에 ‘大’자를 적은 것일 수도 있다”며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 변호사의 진술에 대해서도 “왜곡된 진술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명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무리한 주장을 펼치다 오히려 증거 인멸의 염려를 키웠다는 시각이 많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증거가 왜곡됐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패착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도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증거기록이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건 할 소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모킹건’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고법 판사는 “수사 전후 핵심 참고인과 수차례 전화를 주고받는 등 구속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정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검찰은 당분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25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양 전 대법원장을 불러 조사를 재개할 전망이다. 구속한 피의자는 20일 이내에 재판에 넘겨야 한다. 검찰로서는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의 재판배당 조작 의혹 등 구속영장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혐의에 대한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추가 기소하면서 불거진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전·현직 의원들의 재판 청탁 의혹 수사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설 연휴 직후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할 전망이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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