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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빠진 김영란법… 손혜원 파문 불렀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손혜원 의원을 둘러싼 떠들썩한 논란 때문에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는 어려운 용어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해충돌이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 사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말한다. 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전형적인 이해충돌 사례라는 지적이 많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은 2012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원안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2015년 김영란법 입법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의 반대로 삭제되고 말았다. 진작 마련될 수 있었던 예방 장치가 없어진 것이다.

정치권과 법학계에서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삭제되지 않았더라면 손 의원 건이 김영란법에 저촉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 개정을 통해 관련 규정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해충돌 방지 조항, 왜 빠졌나

김영란법 원안에 있던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공직자가 자신의 4촌 이내 친족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직무에서 배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조항은 19대 국회에서 법안을 논의하던 중 여야 합의로 삭제됐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여러 의원이 이해충돌 방지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 김용태 법안심사소위원장은 이 조항에 대해 “국민의 직업 선택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제기됐다”며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내용이 모호하고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무위 민주당 간사였던 김기식 의원은 “(이해충돌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뭘 하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의 문제”라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실행 가능성을 봐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도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법적·논리적으로 굉장한 난점이 있다”며 “지금 여론이 집중된 금품수수 부분에 더 집중해서 법을 새롭게 설계해보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당시 정무위원들이 회의실 밖에 모여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빼기로 ‘짬짜미’했던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반쪽짜리 김영란법을 전체회의로 넘기기로 결정한 2015년 1월 8일 법안소위 회의록을 보면 이런 정황이 그려진다. 이해충돌 방지 건을 놓고 의원들 사이에 격론이 오가다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자 신동우 새누리당 의원이 “빼고 가는 방법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후 해당 조항에 관한 논의는 회의록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해충돌 방지 내용이 담긴) 18항부터 21항까지는 소위원회에 계류시킨다”며 논의를 끝낸 기록만 남아 있다.

김영란법에서 정작 중요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사라진 것을 두고 법학계 등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 법을 입안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2015년 3월 기자회견에서 “원안에 있던 부정청탁 금지, 금품수수 금지, 이해충돌 방지 중 가장 비중이 큰 한 가지가 빠져 반쪽 법안”이라며 “빠진 한 가지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아쉬움을 나타내며 이 조항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충돌 방지 조항, 왜 필요한가

김영란법의 나머지 반쪽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없지 않았다. 이번 20대 국회에도 이해충돌 방지 부분을 보완한 김영란법 개정안이 여러 건 계류돼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016년 8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포함한 김영란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해 4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재차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상임위 심사조차 거치지 못한 상태다.

이번 손 의원 사태를 계기로 학계를 중심으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관련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정치인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도 “과거 의원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빠져야 했던 관련 조항을 되살려야 한다”며 “보완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손혜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만으로는 처벌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공직자윤리법은 주로 공직자의 재산등록이나 퇴직 공무원의 취업 제한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한 법으로, 이해충돌 행위 전반을 다루지는 않는다. 공무원 행동강령도 이해충돌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는 있지만 이를 위반했을 때 내부 통제 수단인 징계에만 의존한다는 한계가 있다.

국회의 논의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일부 의원이 관련법 발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김영란법 개정안보다는 별도로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으로 가야 한다”며 “현재 권익위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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