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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강성부 펀드



중견기업 요진건설의 공동창업자 정지국씨가 2014년 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지분 45%를 상속받게 된 유족은 막대한 상속세를 낼 돈이 없었다. 세금을 내기 위해 섣불리 지분을 정리할 경우 경영권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사모펀드운용사 LK투자파트너스가 ‘백기사’로 등장했다. 550억원 펀드를 조성하고 정씨 지분을 전량 사들여 2대 주주가 됐다. 지난해 1월 1000억원대에 되팔았는데 매수자는 다른 창업주인 현 회장 측이었다. 오너 일가의 원활한 상속을 돕고 다른 오너의 경영권을 공고하게 해주면서 2년 반 만에 두 배 수익을 냈다. 이 투자를 주도한 사람이 강성부(46) 당시 LK 대표였다.

강 대표는 6개월 뒤 LK투자파트너스에서 독립해 KCGI란 운용사를 차리고 펀드 모집에 나섰다. 요진건설 투자로 큰 이익을 봤던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해 불과 한 달 만에 1400억원을 모았다. 이는 지금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강성부 펀드’의 밑천이 됐다. 그는 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의 머리글자로 회사 이름을 지었다. 과거 ‘장하성 펀드’처럼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주주행동주의를 추구하는데,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란 사명이 말해주듯 오너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시절 국내 최초로 100대 기업 지배구조도를 완성해 공개했던 강 대표는 지배구조를 기업의 ‘속살’이라고 말한다. 지배구조란 곧 의사결정 구조여서 기업의 변화와 혁신도 지배구조 개선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 안정성 효율성을 분석해 투자할 기업을 선별하던 애널리스트는 2015년부터 직접 투자에 뛰어들었다. 첫 투자처인 요진건설에서 지배구조 안정화를 돕는 백기사로 큰돈을 벌더니 한진그룹을 향해선 흑기사로 돌변했다.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 10%를 들고 “회사에 범죄행위를 저지르거나 평판을 실추시킨 자의 임원 취임을 금지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사실상 조 회장 일가를 퇴출시키자는 뜻이다. SNS에는 강성부 펀드를 응원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펀드의 싸움에서 국민이 펀드 편을 드는 초유의 상황에 증권가는 놀라워한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여론전에선 이미 승기를 잡은 듯하다. 결과가 어찌 되든 오너 리스크가 고질화된 한국 기업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는 톡톡히 거둘 것 같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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