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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배병우] 5개월 걸린 비건-최선희 첫 만남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취임한 것은 지난해 8월 23일이다. 미국의 대북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직책이지만 그는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한 차례도 만나지 못했다. 콧대 높은 최 부상과 체면을 구긴 비건 특별대표의 모습은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제재 해제 우선”을 요구하며 뻗대기에 들어간 북한의 전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건 특별대표가 마침내 최 부상과 지난 19일(현지시간) 스웨덴에서 처음 만났다. 취임한 지 5개월 만이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50㎞ 떨어진 산골 휴양시설에서다. 싱크탱크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주관으로 열리는 국제회의 형식을 빌렸지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와 장소 등을 위한 실무협상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지켜본 뒤 19일 서둘러 스웨덴으로 날아왔다. 회의 일정은 22일까지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합류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휴양시설에서 남·북·미가 숙식을 같이하며 협상을 하는 ‘그림’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3박4일 합숙 담판’으로 끝장을 볼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일단 김 부위원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나섰지만 간극을 좁힌 징후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가 김 부위원장 면담 뒤 하루 종일 침묵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김 위원장이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제시하지 않았고,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높은 기대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도 1차 회담 때처럼 대놓고 낙관론을 펴기 어렵다.

그래서 스웨덴 실무회담이 최 부상과 비건 특별대표의 상견례로 끝날 것이며 다음 협상을 기약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비핵화 의제에 대한 양측의 의견차가 워낙 크다. 북·미 정상회담도 2월 말보다 미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부상이 체류 일정을 연장할 경우 회담 결과를 조금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평양에 21일 복귀한 김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에게 미국의 요구사항을 보고하고 지침을 받으려면 22일을 넘길 수밖에 없다. 지침을 받기 전에는 최 부상이 입을 열기 힘들 것이다. 이 경우 회의는 비건 특별대표와 최 부상 간 상견례로 그칠 공산이 크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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