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인화된 사진… 조선 후기 문인화 ‘설송도’가 연상된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2010).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겨울나무가 쓸쓸하면서도 당당하다. 한지에 인화해서일까. 21세기 도심의 눈 쌓인 나무에서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인상의 ‘설송도’가 연상된다. 붓 대신 카메라로 그린 수묵화의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김중만(64·사진) 작가가 2008년부터 이어온 나무 작업을 모아 서울 송파구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사진전 ‘상처 난 거리’를 열고 있다. 김혜자에서 지드래곤까지 연예인 인물 사진을 담아오며 거둔 성공을 뒤로하고 2007년 돌연 순수예술로 돌아선 이다. 지난 3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귀고리와 목걸이, 문신에 파란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육순을 넘긴 남자의 차림새가 그랬다.

그가 나무를 만난 건 2004년이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집에서 청담동 작업실로 향하며 중랑천 둑길을 지나던 그의 눈에 매연을 뒤집어쓴 채 상처가 난 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다. 오가며 지켜보기를 4년. 마침내 자신감이 생긴 2008년부터 피사체가 된 나무는 처음엔 감각적으로 표현됐다.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는 나무, 몇 가닥 가지를 애잔하게 늘어뜨린 나무…. 그러다 어느 날 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면엔 온기가 돈다. 3~4년 전부터 한지에 인화하면서 조선시대 화조화 느낌을 자아내는 이 ‘나무와 새’ 시리즈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밀어붙이자 선물처럼 날아든 것이다.

그는 2010년 현대카드의 국내외 명사 초청 ‘슈퍼토크’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장 글렌 로리와 함께 강연한 경험을 얘기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던 시기였죠. 그때 로리 관장으로부터 편지가 왔어요. ‘당신의 작품은 도시의 상처 난 나무여서 더 좋았다’고요. ‘더 해야겠구나’ 싶었죠. 둑길에 카메라를 들고 다시 나간 그날, 새가 사진 속으로 들어왔어요.”

혼자 서 있는 겨울나무 시리즈는 과감한 여백, 간일(簡逸)한 구성을 통해 문인화적 향취가 난다. 2월 2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