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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해 특수 기대했지만… 상인들 “金은커녕 돼지고기도 안팔려”




‘세일. 삼겹살 1근 9600원, 목살 1근 9600원, 전지(앞다리살) 1근 6000원’. 허모(63)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동작구의 한 정육점 간판에 할인행사 문구를 적어 놨다. 38년간 정육점 일을 해왔다는 허씨는 “요즘은 저렇게라도 안 써 놓으면 손님이 아예 안 온다. 일단 들어오라고 붙여 놨다”며 “내년쯤이면 장사 못 한다고 봐야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돼지의 해, 기해년(己亥年)을 맞아 연초 특수를 기대했던 소상인들이 경기 부진과 소비심리 저하로 울상을 짓고 있다. 황금돼지해라 기대가 컸던 ‘금’이나 ‘돼지’ 등 관련 업종에서조차 연초 효과를 못 보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6일 “황금돼지해이니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기대하고는 있다”면서도 “최근 돼지고기 가격이 많이 떨어져 양돈농가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최근 돼지고기 수입이 늘어 공급량이 더 증가한 데다 경기 부진까지 더해지면서 업계 전체가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8년간 정육업을 해온 정모(42)씨도 “주변 정육점들을 보면 많게는 50%, 적게는 20~30%씩 지난해보다 수입이 줄었다. 황금돼지해라고 돼지고기를 더 찾진 않더라”며 “경기도 좋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외식업계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돼지고기구이집을 운영하는 전모(60)씨는 “황금돼지해니까 대박나길 바라지만 연말 연초 장사에서 체감할 수 없었다”며 “장사하는 입장에선 요즘 흥도 안 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계가 경쟁적으로 황금돼지 마케팅을 벌이는 탓에 가격 경쟁력까지 잃게 됐다는 호소도 있었다. 시장 상인들 사이에선 “대형마트나 홈쇼핑, 백화점에서 이벤트를 벌이며 가격 할인행사까지 하는 통에 소상공인들은 더욱 찬바람만 느끼고 있다”는 토로가 쏟아졌다.

귀금속 거리는 경기침체 여파를 더욱 실감한다고 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서울 종로3가 귀금속 상가거리에는 휴일임에도 영업 중인 곳이 많았다. 88곳 정도의 귀금속 상점이 몰린 한 건물 1층에 약 50곳이 문을 열었지만 손님은 5~6명에 불과할 정도로 휑했다.

로운주얼리 김태현(42) 부장은 “예전 백말띠해에는 순돈 뒷말굽을 많이 팔았는데 올해는 잘 모르겠다”며 “황금돼지해인 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15년간 금은방을 해왔다는 김모(50)씨는 “밥은 안 먹으면 안 되는데 귀금속은 사치품이니 경기가 힘들면 없어도 되는 물품”이라며 “오늘 손님을 한 명도 못 받았다. 이전보다 수입이 확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엠케이주얼리 점장 박정욱(45)씨는 “자영업이니까 마음대로 쉬어도 되지만 요즘은 매일 출근한다”며 “혹시 물건 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손님이 있을까봐 자리를 못 비운다”고 말했다. 우신보석전문상가 ‘행복한 시간’ 점장 홍영숙씨는 “날짜만 안 정해졌지 대부분 가게가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1월 1일인데도 마음이 쫓겨서 못 쉬고 나왔다”고 말했다.

금은방 사장 A씨는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는 손님도 깎아달라는 말씀이 많다. 30년 장사 중 최악”이라고 했다. 금은방을 운영하는 성모씨는 “장사 망할까봐 써 붙이진 않았지만 귀금속 상점도 많이 내놓고들 있다”며 “가게 팔리면 얼른 자리 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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