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모로코식 레몬 절임



너의 안부를 전해 들었다

펼치면
전부 펼쳐질 것 같았다

입구를 꽉 묶어두었던
가느다란 실이 풀릴 것만 같았다

주머니 안에 넣을 수 없었다
주머니는 자주 비워야 하고
빨래를 할 때마다 속을 뒤집어야 했으니까

멀리 있다가 가끔씩 찾아오는
한겨울의 눈처럼

녹지 않고 쌓일까봐
겨울이 계속될까봐

얇게 저민
레몬 슬라이스, 소금과 함께
병에 담아 밀봉하였다

레몬 절임에도 상온에서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나면

다 녹아 알맞게 절인 레몬과
뒤섞인 안부를
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휘휘 저어볼 수 있겠지

안미옥의 시 ‘2019 현대문학상 수상시집’(현대문학) 중 부분

1984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시인 안미옥은 2012년 동아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온’이 있다. 김준성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안미옥의 시에는 감각의 한계에 도달하는 듯한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촉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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