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돝(돼지)의 아지(새끼)가 ‘돼지’



예전에 집마다 한두 마리는 기르던 돼지. 가진 것 다 인간들에게 주는 고마운 가축인데도 더럽다느니 미련하다느니, 억울하게 나쁜 이미지가 씌워졌습니다. 돼지는 자리를 가려 앉고 눕고 할 만큼 더럽거나 미련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든 돼지든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가 아는 돼지를 이르던 옛말은 ‘돝’입니다. ‘현무문 두 도티…’ ‘닭과 도티…’. 앞은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쓰인 최초의 작품 ‘용비어천가’에, 뒤는 성종 때 간행된 ‘두시언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도티’는 ‘돝이’가 연음 표기된 것으로, ‘돼지가’란 뜻입니다. 함경도 사람들 입에는 아직 ‘돝’이 남아 있다 합니다.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처럼 돼지의 새끼를 이르는 말은 없을까요. 있었습니다. ‘돼지’입니다. 지금은 어미, 새끼 가릴 것 없이 돼지라고 하지만 돼지 새끼도 강아지 송아지처럼 ‘돝아지’ 형태로 쓰이다 ‘돝’이 사람들 입에서 멀어지면서 ‘돼지’로 일원화된 것이지요. 돼지 새끼가 ‘동아지’가 되지 못한 채 ‘도야지’라는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 사는 집을 家(가)라고 하지요. 家는 집 아래 돼지(豕, 시)가 있는 형상의 글자로 사람과 돼지가 친근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돼지를 이르는 한자로는 猪(저)와 豚(돈)이 많이 쓰입니다. ‘서유기’에서 삼장을 따라 손오공, 사오정과 함께 천축(天竺, 인도)으로 가는 돼지가 ‘猪팔계’이지요.

어느덧 무술년이 서산에 걸렸습니다. 며칠 후면 격동과 파란의 50년대생 막내가 환갑을 맞는 돼지의 해 기해(己亥)년이 동산에 떠오를 것입니다.

어문팀장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