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과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15일 시장실에서 만나 불평등 문제를 주제로 1시간가량 대담을 나눴다. 두 사람은 최근 한국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담은 ‘한국 경제 규칙 바꾸기’라는 책을 여러 명의 연구자들과 함께 출간했다. 이 책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불평등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2016년에 쓴 ‘경제 규칙 다시 쓰기’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시장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를 다룬 스티글리츠 교수의 책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의 역할을 강조한 부분이라든지, 불평등을 해결하는 건 정치다, 정치인이 어떤 정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얘기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면서 “그때부터 국내 불평등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 경제의 규칙을 바꾸자는 주제의 연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대담은 한국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진단으로 시작됐다. 박 시장은 “한국에서 불평등 문제가 악화된 이유 중 하나는 사회복지 분야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며 “불평등도 문제지만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치유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전 교수는 “한국의 경우 소득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가 11%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0%가 넘는다”면서 “정부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불평등을 개선하는 노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얘기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와 재정의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은 “복지가 강한 나라일수록 국가경쟁력이 높다. 국가 예산의 50%를 복지에 쓰는 나라들도 있지 않느냐”면서 “서울시의 복지예산은 내가 처음 취임하던 때와 비교해 거의 3배로 늘어났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불평등을 해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면서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은 취임 초 10%였는데 지금 30%까지 왔다. ‘찾동’(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 하나만 해도 2000명 넘는 사람들을 고용했고, 앞으로 온마을돌봄 시스템을 하면 보육보우미 1만명을 새로 채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전 교수는 스웨덴을 사례로 들었다. 스웨덴은 시장소득 불평등이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정부 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낮춘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등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가 세계적으로 보면 더 보편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복지재정 확대는 종종 ‘예산 낭비’라든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복지가 확대되면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전 교수는 “박 시장이 말한 대로 보육을 공공이 책임져 준다거나 공공임대주택이 늘어난다면 노동자들의 보육비, 주거비 등이 줄어들면서 기업의 임금 상승 압력이 줄어든다. 또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지면 혁신에 뒤따르게 마련인 리스크를 감수할 여력이 생기기 때문에 혁신경제가 훨씬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완전 고용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스티글리츠 교수의 주장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고용문제에 대해서도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고용이 유럽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공공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내수를 살리고 국민들의 높아진 복지·사회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전 교수도 공공부문 고용 확대에 동의하면서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 질에 대한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의 격차를 완화하면서 공공부문 고용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두 사람은 최근의 소득주도성장 논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박 시장은 “생활임금, 청년수당, 제로페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서울시가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들은 소득주도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면서 “그러나 저임금노동자의 일자리를 줄이고 자영업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온다는 반응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야당이 만악의 근원이 소득주도성장에 있는 것처럼 공격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고속성장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대기업 위주의 몇몇 제조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구조를 개편하지 못한 것이 현재 경제 불황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지난 10년간 정권을 담당했던 야당에게도 그 책임이 있지 않느냐. 그리고 야당은 불평등 문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전 교수도 “방향은 맞지만 준비가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소득주도성장이 국가성장전략이 되기 위해서는 재정정책, 혁신정책 등과 연계하고 상호 보완이 이뤄져야 하는데 정책 조합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규칙으로 재벌 개혁, 경제의 이중구조 해소, 복지 시스템 구축, 공정한 조세 시스템 등 6가지를 제안한다. 이중 ‘노동 교섭력 높이기’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자 등 그동안 불평등 문제의 약자들로만 인식되던 주체들을 불평등 해결의 동력이자 주체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들의 발언권과 협상권을 강화해 불평등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조직화하고 단체로 협상을 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격차와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이 집단교섭권을 통해 대기업과 협상할 수 있어야 되고, 대기업이 협상이 응하지 않는다면 처벌하는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조가 강할수록 불평등 수준이 약하고 행복도도 높다. 복지선진국인 북유럽의 노조 가입률은 70%가 넘는다”면서 “정치인으로서 노조의 신뢰를 얻고 자본과 노동이 함께 가는 노사평화시대를 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노동시장 내 불평등, 그러니까 비정규직과 정규직, 원청과 하청 사이의 임금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 한국 불평등의 특징 중 하나”라며 “노동시장 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조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