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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CEO들, 단기적 성과 급급하다 날개없는 추락 반복



세계적인 최고경영자(CEO)들은 왜 날개 없는 추락을 반복하는 걸까.

자동차업계의 ‘스타 CEO’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소득 축소신고 혐의 등으로 회사에서 쫓겨나자 거대기업 CEO들의 허무한 몰락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CEO에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지배구조가 그들의 비위나 잘못된 의사결정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곤 전 회장은 20년 전 파산 위기에 몰린 닛산자동차를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극적으로 회생시킨 인물이다. 그는 이후 일본 재계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프랑스 브라질 레바논의 3중 국적을 가진 외국인 CEO인 곤은 폐쇄적인 일본 기업에 진출해 새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는 2001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로 선정됐고, 이듬해에는 포천지가 뽑은 ‘올해의 기업인’에 오르기도 했다.

곤 전 회장은 고국 레바논에서도 경영인으로선 전례 없는 인기를 끌었다. 레바논 정부는 곤의 얼굴이 담긴 우표를 발행하는가하면, 그를 대통령 후보로 거론하기까지 했다. 그가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레바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서다. 무인 메헤비 레바논 장관은 “곤이 언젠간 우리나라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주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곤 전 회장은 ‘비극적 영웅’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닛산 내부조사 결과 곤은 소득 축소신고와 회사 자금 사적 유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뒤 닛산과 미쓰비시자동차에서 회장직을 박탈당했다. 곤의 갑작스러운 해임 배경을 두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프랑스와 일본 정부의 알력다툼 등 여러 설이 돌고 있지만, 그가 닛산 이사회 의견을 무시하고 르노와의 무리한 인수합병을 추진하며 CEO 권한을 남용했다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머리사 메이어 야후 전 CEO도 촉망받는 기업 수장이었으나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금발 미녀에 천재 컴퓨터과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메이어는 37세에 최연소 CEO가 됐다. 구글에서 일할 때 지메일과 구글맵 개발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은 게 결정적 이유였다. 그는 2012년 포브스가 뽑은 ‘올해를 빛낸 가장 매력적인 여성 12명’에 포함됐고 뛰어난 외모 덕에 패션잡지 ‘보그’의 표지모델로 선정되며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메이어 역시 주어진 CEO 권한을 현명하게 활용하지 못했다. 그는 원칙 없이 여러 스타트업을 인수해 30억 달러에 달하는 회사 자금을 낭비하고 구조조정 명분으로 직원들을 가차 없이 해고했다. 결국 야후는 그나마 남아있던 수익사업들조차 버라이즌에 팔아넘겨야만 했고 메이어는 지난해 CEO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미국의 대표 제조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 CEO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도 과거에는 ‘경영의 신’으로 불렸다. 특히 웰치 전 CEO는 1999년 포춘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최고의 경영인’으로 오르기도 했다. 이멜트는 과감한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GE를 디지털 및 신재생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지난 6월 GE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에서 111년 만에 퇴출된 데 이들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웰치는 제조업의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금융업에 치중했고, 이멜트는 낙관론에 빠져 무리한 투자와 인수합병을 반복했다는 게 그 이유다. 지난 1년간 다우지수는 15% 오른 반면 GE 주가는 홀로 53% 떨어지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단기적 성공에 집착했던 전임 CEO들이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신호탄을 쏜 리먼브라더스의 리처드 풀드 전 CEO는 주위의 경고를 무시하고 과도한 리스크를 무릅썼다가 회사를 파산으로 몰아넣었다. 로이터통신은 당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풀드의 과신이 화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지역은행에 불과했던 웰스파고를 미국 ‘톱3’ 은행으로 성장시킨 존 스텀프 전 CEO도 마지막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는 판매 목표 달성을 위해 고객 정보를 도용, 200만개에 달하는 ‘유령 계좌’를 개설한 직원들의 비위를 수년 간 묵인했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잘나가던 거대기업 CEO들이 초라한 말로를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CEO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이 그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리타 맥그래스 미 콜롬비아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제왕적 리더십을 지닌 CEO 때문에 이사회가 의견을 내기 힘든 분위기가 조성되면 기업에 치명적 위기가 닥친다”며 “CEO가 자신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찰스 엘슨 미 델라웨어대학 기업지배구조센터 소장은 “한 사람이 너무 많은 권한을 손에 쥐면 의무감과 책임감을 잃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CEO의 과도한 권한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결합하는 관행을 자제하는 한편 기업 내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는 게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엘슨 소장은 “권한을 나누는 것을 꺼리지 않는 사람이 좋은 CEO”라고 강조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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