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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은 펄펄 뛰는데 조용한 정부… ‘과거사’ 더 꼬인다

지난 10월 30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일본 도쿄에 위치한 외무성에 이수훈 주일 한국 대사를 초치해 이날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자들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항의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가 적반하장식의 고압적인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유감 표명, 자제 촉구 수준의 미온적인 대응만 하고 있다. 정부가 지금처럼 국내 여론과 국제정치 사이에서 방향을 못 잡고 시간만 끌어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법원은 29일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강제징용 피해자 6명이 같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도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그러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담화를 내 “일·한 우호 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즉각 국제법 위반 시정을 포함,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거듭 요구한다”고 말했다.

고노 외무상의 담화는 한국 대법원 판결 직후인 오전 10시30분쯤 외무성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외무성은 한국의 대일(對日) 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문구가 담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2조 조항도 담화문에 첨부했다. 이번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이수훈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항의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자제를 촉구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청사로 불러 면담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뒤 민·관 협의를 거쳐 정부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이달 중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관련 협의가 열렸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식민지 지배는 불법이다, 그러나 일본에 배상 요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2005년에 정리된 우리 정부 입장”이라며 “정부가 큰 방향을 잡고 민·관이 함께 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시간을 끈다고 잦아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의 효력 범위를 정하기 위해 2005년 구성됐던 민관합동위원회는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는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냈다. 단, 일본군 위안부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에 대한 배상 청구권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이 총리에게 강제징용 배상 대응책을 따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 총리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외교부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지적한 후 외교부가 관련 내용을 보완해 설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늦지 않게 (정부 입장을) 정립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한·일 관계는 계속 삐걱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7년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양자 회담을 갖고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식적인 상호 방문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지혜 조성은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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