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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하윤해] 비핵화 회의론이 사라지려면



최근 들어 미국인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상황이 부쩍 늘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면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궁금했던 것들을 꺼내 묻는다.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미국인 아버지부터 한반도 전문가까지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다양하다. 날카로운 물음이 많아 대답하기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인들의 질문에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주로 북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북한이 진짜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는 거의 모든 사람이 던지는 대표 질문이다. 그 다음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보다 문재인정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들은 “문재인정부가 북한에는 ‘노(No)’라고 못하면서 왜 미국에만 대북 제재 완화라는 양보를 요구하는가”라고 묻는다. 얼마 전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명함을 주고받자마자 질문을 쏟아냈다. 취재원과 기자가 뒤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놀랐던 질문은 ‘냉면 발언’ 내용이었다. 그는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를 영어로 정확히 번역하려면 무엇이라고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한국 대기업 총수들에게 던졌다는 발언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알고 싶어 했다. 마치 객관식 문제를 내듯 스스로 서너 개의 표현을 예로 제시하더니, 어떤 것이 그 발언의 의미에 가장 가까우냐고 묻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논란의 확대를 피하려는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한국 내에서 반대 여론은 없느냐”였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불꽃이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문재인정부가 고군분투하는 것을 의심하는 시선은 미국 내에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에 대해서도 한·미 간 의견은 일치한다.

다만, 접근법을 놓고는 인식 차이가 엿보인다. 미국에선 한국이 대화의 불꽃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북한에 너무 끌려 다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은 또 한국이 북한 비핵화 문제를 감성적으로 대응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한국 정치인을 만나 “미국은 비핵화 ‘의지’라든지, 진정성이라든지 물리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기준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핵 신고서 제출과 같은 북한의 구체적인 액션만을 보고 현실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냄비 여론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큰 차이가 없다. 지난 6·12 북·미 정상회담이 던져줬던 극적인 감동은 미국 내에서 이미 식었다. 거창한 팡파르로 시작됐으나 반년 가까이 진척이 없다 보니 지켜보던 사람들이 지친 것 같다. 그 틈을 대북 회의론이 밀고 올라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사안이라 내용도 보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 특파원들을 만났던 한 미국인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그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insane)”이라고 말해 모두가 놀란 적도 있다.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내 철도 공동조사 대북 제재 면제에 동의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미국이 “이번 한 번만”이라고 응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나돈다. “한·미 공조는 굳건하다”는 정부 당국자의 말과는 다른 징후가 워싱턴에서는 더 많이 포착된다. 회의론의 대상이 북한에서 한국으로 전이되는 현상까지 감지된다.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절박감에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응석을 다 받아준다는 불평이 미국에서 높아지고 있다. 북한에는 쩔쩔매고, 미국에는 애원하는 듯한 현재의 태도는 북한 비핵화 협상의 걸림돌이다.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비딱한 시선이 사라질 때 한·미 양국에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지지가 더욱 높아지고, 회의론도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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