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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사 블랙리스트’ 못 찾았나 안 찾았나 감췄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앞서 진행된 대법원의 자체 조사가 부실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세 차례나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번번이 “블랙리스트는 실체가 없다”고 결론냈다. 특히 법원행정처는 ‘뒤늦게 관련 증거가 드러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을 ‘최악의 후폭풍’으로 분석해놓고도 끝내 실체 규명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현 대법원까지 이어진 사법부 자체 조사 과정 전반에 문제가 없었는지 집중 조사할 태세다.

검찰 관계자는 26일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법원 자체 조사 과정 경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지난 6일 법원행정처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 사법행정 수뇌부의 결재를 거친 문건이다. 대법원장 서명까지 이뤄진 문건의 존재를 관련 부서에서 모를 수 없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행정처에서 나온 이 문건은 검찰이 포렌식 작업으로 복구한 파일뿐만 아니라 종이 형태로도 발견됐다. 대법원이 복잡한 절차 없이 행정처 서류뭉치를 뒤져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는 의혹이 생기는 대목이다.

올해 이 문건 작성이 중단된 점도 의심을 키우고 있다. 검찰은 지속적으로 관리해오던 문건 작성을 갑자기 멈춘 것은 현 행정처가 해당 문건 존재 여부를 알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1차 조사를 맡은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기였던 지난해 4월 18일 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에 대해 부당한 압박을 가한 정황을 발견했으나 판사들의 동향을 분석한 블랙리스트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이뤄진 두 차례 조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지난 1월 추가조사위원회와 지난 5월 마지막 조사 결과를 내놓은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모두 “인사상 불이익이 담긴 블랙리스트는 실체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정처는 1차 조사 결과 발표 직후 외부 수사기관에 의해 블랙리스트 관련 물증이 나오는 사태를 ‘최악의 경우’로 분석해놓고도 추가 물적 조사를 거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처는 지난해 4월 27일 작성한 ‘현안 관련 추가 물적 조사 여부 검토’ 문건에서 추가 물적 조사를 미실시한 상황에서 블랙리스트 의혹이 발견되는 경우를 ‘최악의 후폭풍(가능성 10%)’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는 ‘관련자 다수 징계, 대법원장 리더십 상실’이라고 봤다. 하지만 결론부에선 조사위원회의 추가적인 물적 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개선방안 논의에 집중할 여건을 마련’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에서 정해진 이 방침은 김 대법원장 때의 후속조사 시점에도 관철됐다.

검찰은 대법원 1차 조사를 진행했던 이인복 전 대법관을 통진당 가압류소송 개입 사건·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등과 관련해 최근 2차례 비공개 소환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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