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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등 자연재해 준하는 통신 장애 대응 매뉴얼 필요”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변 일대 통신망이 마비된 지 이틀째인 25일 이화여대 인근 한 편의점 유리창에 카드 결제 등이 안 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윤성호 기자


24일 발생한 서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는 소규모 통신사 지사 한 곳의 타격이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와 경찰·병원 등 국가 기반시설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통신 장애도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에 준하는 대비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문제로 ‘재난안전통신망의 생존신뢰성 부재’를 꼽았다. 생존신뢰성은 재난안전통신망의 주요 조건 중 하나로 정전 등 비상 상황에서 통신이 가능하며 장애가 발생해도 신속히 복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KT 화재의 경우 통신망 복구가 지연되는 동안 경찰 소방 병원 등이 사건사고 접수에 애를 먹어 피해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보통신기술(ICT)의 긍정적인 면만 강조하고 부작용은 간과한 결과라고 봤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과학기술 발달로 우리 삶이 편리해질수록 안전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통신의 빠른 속도, 정확성을 위해선 전산망 등 관리가 중앙집권적으로 이뤄져야하는데 그러다보니 한 군데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많은 지역,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한 곳으로 집중된 네트워크를 분산시키는 ‘백업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강충구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통신망 설계 시 재난을 대비해 단일회선이 아닌 여러 개를 구비해야 하는데, KT 아현지사는 업그레이드를 안 했다. 게다가 유선(인터넷)과 이동통신(모바일)이 같이 있어 피해가 더 컸다”고 말했다.

우승엽 도시재난생존연구소장은 “통신망 시설의 정비 인력이 외주화되는 것도 문제”라며 “국가기반시설인데도 관리직이 대부분 계약직이다 보니 전문가가 없어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의존성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공학전공 교수는 “일본은 통신 발달로 유선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재난 시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 공중전화 유선망을 비상 필수시설로 확보하고 있다”면서 “현재 철수 추세인 공중전화 등 유선망을 비상시에 기능할 수 있도록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정부가 통신장애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영국 등 해외의 경우 재난대응 표준운영절차(SOP)를 오랜 기간에 걸쳐 마련했다. SOP는 재난발생 시 관련 기관들의 일사불란한 지휘통신체계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SOP가 마련됐다면 이번 화재 때 ‘KT 통신망이 망가졌으니 2안 망을 사용하라, 그것도 안 되면 3안 망을 이용해라’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경찰 병원 등이 차질 없이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백업 통신망 구비 등 민간 통신사업자가 국가기간망으로서 제대로 역할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KT 화재 2차 합동감식을 실시한 결과 방화나 실화 가능성은 낮다. 잔해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 화재 원인과 발화 지점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규영 이재연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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