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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우버’ 죽인 오락가락 행정…공유경제 발목 잡는 변덕 정책



한국의 공유경제가 시장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채 ‘외딴섬’에 갇혔다. 낡은 규제, 업계의 기득권은 새로운 산업·서비스의 싹을 자르고 있다. 갈등과 충돌을 조율하고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정부는 ‘중재자 역할’에 거듭 실패하고 있다. 스타트 업계에선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정부 판단에 새 서비스를 내놓기 겁이 난다”는 말까지 한다.

오락가락 행정 때문에 시장에서 호평 받던 공유경제 서비스업체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일도 벌어졌다. 승차공유 서비스업체 차차크리에이션은 지난해 10월 차차 서비스를 내놓을 때만 해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차차는 획기적인 공유경제 서비스라는 평가를 받으며 특허까지 따냈다. 영업을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회원 4만명을 모집했다.

차차는 렌터카와 대리운전 기사를 동시에 제공하는 서비스다. 현행법에서는 택시 등 운수사업자만 기사를 고용해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차차는 법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렌터카를 예약하고 동시에 대리운전 기사가 렌터카를 운전하게끔 해 차량이 없거나 운전을 못 하더라도 마음껏 차량을 이용토록 했다. 차차크리에이션은 미리 국토교통부로부터 “서비스에 위법 요소는 없다”는 유권해석도 받았다.

그러나 올해 7월 날벼락이 떨어졌다. 국토부가 “차차는 ‘유사 택시영업’”이라며 “렌터카로 유상 운송을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을 어겼다”는 유권해석을 뒤늦게 통보했다. 택시·렌터카 업계에서 차차의 위법 여부를 국토부에 문의했고, 외부 법률 자문과 서울시·렌터카연합회 의견을 수렴한 결과였다. 국토부는 “차차 드라이버의 수익은 탑승자를 구하기 위해 일정한 구역을 배회하는 영업행위 대가까지 포함됐다. 고객의 배차 요청에 따라 이동거리와 대여기간이 달라져 기존 택시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국토부의 유권해석이 180도 달라지자 차차는 영업 시작 약 1년 만인 지난달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사실상 사업을 접은 것이다. 스타트 업계에선 정부가 일관성 있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시장성 있는 새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차차처럼 ‘비운의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내놓은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기존 업체에서 불법이라며 반발하자 국토부는 위법성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이 대표는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의 공동 민간본부장이다.

한 스타트업체 관계자는 25일 “언제 불법 딱지가 불어 큰 손해를 볼지 모르는 서비스를 선뜻 내놓을 업체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벤처기업협회는 “미국의 우버, 중국의 디디추싱, 동남아시아의 그랩 등 승차공유 서비스로 기업과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데 한국은 부정확한 규제로 사업 자체를 변경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달 중에 나올 예정이던 정부의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 발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올인’해야 하고 부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예정돼 있어 공유경제 대책을 수립·발표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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