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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이겼는데… 소송비 부담은 ‘복불복’



통상 패소한 측이 책임지고, 판사 재량으로 비율 등 조정
승소하고 비용 폭탄 맞기도, 불만 있어도 구제절차 없어


버스를 운행하는 여객운수업체 3곳이 2015년 승차권판매대금 등 일부를 돌려달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상대는 서울의 한 버스터미널을 위탁 운영하는 업체와 그 업체 대표 A씨였다.

여객운수업체 3곳은 업체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그러자 A씨를 상대로 낸 소송은 취하했다. 하지만 A씨는 소 취하에 동의하지 않았고 재판에서도 이겼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소송비용을 A씨와 운수업체 측 양쪽이 각자 부담하라고 했다.

여객운수업체 측을 대리한 황정근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변호사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그는 “소 취하를 동의하지 않은 피고 덕분에 의뢰인(원고)은 상대방에게 물어줄 소송비용 1330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일반적이라면 패소한 원고인 운수업체 쪽이 소송비용을 다 부담했을 텐데,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내려줬다는 취지다.

한 변호사는 황 변호사 글에 단 댓글에서 “의뢰인이 행정청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는데 소송 중에 행정청이 처분을 취소했다”며 “그런데도(행정처 측에 책임이 있는데도) 재판부는 소송비용 각자 부담 판결을 내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황당한 판결’이라는 댓글을 단 방희선 변호사는 “현재 우리 소송비용 부담제도에 대해서는 심각한 연구가 필요한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패소한 측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소송에 대한 책임을 패소한 측에 묻는 것이다. 다만 예외규정을 둬 승소한 쪽에서도 일부 부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그 예외의 기준 등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법원 관계자는 25일 황 변호사가 소개한 손해배상 사건의 소송비용 분담 기준에 대해 “소송의 경과, 양측의 소송 수행과정을 종합해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승소(패소) 판결 시에는 통상 책임이 인정된 비율에 따라 소송비용을 분담하도록 산정되지만, 이 역시 판사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당시 의뢰인 책임이 30%만 인정됐는데 재판부가 소송비용의 50%를 부담하도록 판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소송비용 산정에 불만이 있을 경우 구제절차가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소송의 본래 안건 판단에는 불복해 항소할 수 있지만, 소송비용에 대해서만 다시 다툴 수는 없도록 법이 제한하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판결문에 소송비용 분담 비율을 산정한 기준이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당사자들은 법원이 결정하는 대로 소송비용을 물을 수밖에 없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소송비용은 승패에 따라 몰아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형평에 맞춰 산정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소송비용에 대해서만 불복해 다툴 수 없으니 제도상 맹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익소송의 경우에는 패소자 부담원칙을 일괄 적용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변협은 지난 21일 ‘공익소송 등에서의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박호균 변호사는 “미국은 공익소송에서 국가나 기업이 패소하면 소송비용을 부담시키지만 일반 시민들이 패소할 경우 소송비용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며 “우리도 일반 시민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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