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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처럼 딛고 건너는 섬·섬·섬… 배 아닌 차 타고 일주하는 전남 완도

전남 완도군 약산도 등거산 토끼봉에서 본 황홀한 다도해 풍경. 바로 아래 돌담도 낮고 지붕도 낮은 관산리 마을이 동화마을처럼 한갓지다.
 
이른 아침 신지도 상산에서 내려다 본 장보고대교와 파란 바다를 아름답게 수놓은 섬 풍경. 장보고대교 개통으로 완도 주요 섬 일주가 가능해졌다.
 
대나무 지주가 옷감의 씨줄 날줄처럼 추상화를 그려내는 고금도 매생이 양식장. 아름다운 풍경 속에 어민들의 묵묵한 삶이 응어리져 있다.



 
고금도 묘당도에 있는 이순신 장군 유적지 충무사.


전남 완도군에는 완도군청이 있는 본섬을 비롯해 고금도, 신지도, 약산도(조약도), 청산도, 노화도, 소안도, 보길도, 금당도, 평일도, 생일도 등 55개의 유인도와 210개의 무인도 등 265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산재해 있다. 본섬은 1969년 완도대교로 해남과 연결됐고 1999년 고금과 약산을 잇는 약산대교가, 2005년 본섬과 신지도 사이 신지대교가, 2006년 고금도에서 강진 마량으로 건너는 고금대교가 개통됐다.

지난해 말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장보고대교가 개통하면서 본섬과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 등 완도의 섬 4개가 연륙·연도교로 이어졌다. 섬과 섬, 뭍과 섬을 잇는 연도·연륙교를 따라 해남으로도 강진으로도 징검다리를 딛고 건너듯 길이 열렸다.

바람 끝이 점점 거칠어지는 때 남도 끄트머리에 있는 섬들을 찾았다. 미항으로 손꼽히는 마량에서 고금대교를 건너자 아직 떠나지 못한 가을이 마지막 겨울 채비를 하고 있다.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구슬을 뿌린 듯 아름다운 다도해를 이룬다.

먼저 고금도를 지나 약초가 많이 나는 약산도로 향한다. 섬 중심에 삼문산(397m)이 있다. 삼문산 정상인 망봉과 등거산 토끼봉 사이에 움먹재가 있고 망봉과 장룡산 사이 파래밭재 밑으로 큰 새밭재가 있다. 이 세 개의 재가 문(門)이다. 정상까지 쉽게 올라가는 탐방로가 있다. 진달래공원이 출발점이다. 봄이면 군락지 5만여평을 물들이는 연분홍 진달래가 다도해의 풍광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 멀어 보이지만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어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정상에는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이곳에 서면 360도 파노라마 전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10분 거리인 등거산 토끼봉은 꼭 가봐야 한다. 망봉보다 더 황홀한 다도해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사방이 바다고 천지가 섬이다. 먼발치로 켜켜이 이어지는 나긋나긋한 산이 유연한 곡선을 이룬다. 본섬이 바로 앞에 있고 정면으로 금일도와 생일도가 턱밑이다. 저 멀리 청산도가 손짓한다. 시선을 더 멀리 뻗으면 장흥의 천관산도 확연하고 해남의 두륜산과 달마산이 조망된다. 월출산도 아스라이 보인다. 산 바로 아래 마을은 관산리다. 돌담도 낮고 지붕도 낮은 동화마을처럼 한갓지다.

정상 트레킹이 부담스러우면 공원에서 5분가량 떨어진 전망대를 찾아보자 금일도·생일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문산 아래 동백숲 해변으로 이름난 가사해수욕장이 있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푸르름을 더한다.

다시 되돌아 나와 고금도를 둘러본다. 약산대교를 건너 고금도에 닿으면 바로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선연히 새겨진 묘당도가 지척이다.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 수군 8000명을 거느리고 수군 본영을 설치하고 왜병 30만명을 무찌른 전승 유적지다. 장군의 사당 충무사에는 장군이 직접 만들고 실전에 활용했다는 전진도첩(戰陣圖帖) 모사본이 전시돼 있고, 사당 한쪽에는 숙종 39년(1713년)에 건립한 관왕묘 묘비(廟碑)가 남아 있다. 충무사 앞 월송대에는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장군의 시신을 아산 선영으로 모시기 전 83일간 안장했던 가묘 자리가 남아 있다. 장군의 시퍼런 기개 때문일까. 울타리를 둘러친가묘 일대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묘당도에서 나와 고금도 해변을 달리면 차창 너머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 풍광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고금도 남쪽 해안이 옷감의 씨줄 날줄처럼 추상화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켜켜이 채워진 대나무와 발로 만들어진 지주식 매생이 양식장이다. 그 사이로 어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자 은구슬처럼 반짝이는 물결이 눈부시게 일렁이다.

대나무발은 밀물 때면 물밑으로 가라앉고 썰물 때면 푸른 매생이를 드러낸다. 대나무 지주를 꽂고, 채취하기까지 매생이 양식은 섬사람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고된 노동으로 통한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 속에 어민들의 묵묵한 삶이 응어리져 있다.

이어 장보고대교다. 고금면 상정리와 신지면 송곡리를 잇는다. 2010년 12월 착공해 7년만인 2017년 12월 28일 개통됐다. 총 연장 4.297㎞에 달하는 사장교로 해상교량구간만 1.305㎞이고 H형 주탑 높이는 90.5m에 이른다. 다리 가운데가 약간 볼록하다. 500t급 이하 선박들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해수면에서 교량 상판까지 30m 통과 높이를 고려한 설계다. 야간에는 주변 경관과 조화되는 색채 연출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장보고대교를 건너면 명사십리(鳴沙十里)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신지도이다. 명사십리는 ‘밝을 명’(明)이 아닌 ‘울 명’(鳴) 자를 쓴다. ‘은빛 모래밭이 파도에 쓸리면서 우는 소리가 십리에 걸쳐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울모래등’으로도 불린다. 안동 김씨의 계략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신지도로 유배 왔던 문신 이세보가 밤이면 이곳에서 유배의 설움과 울분을 실어 모래톱에 시를 쓰고 읊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아 붙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흰 백사장이 활처럼 휘어진 해변 소나무 숲 속에 야영장, 텐트촌, 캐러밴이 박혀 있다. 이곳에 명사갯길이 지난다. 강독마을과 물하태를 지나 해안절벽과 원시림을 따라 명사십리해수욕장에 이르는 총 10㎞ 코스로, 오래전 신지도 주민들이 완도로 가는 철부선을 타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던 오솔길이었다.

명사십리 바로 옆에 우뚝 솟은 산이 있다. 형세가 코끼리를 닮은 상산(352m)이다. 산 7부 능선쯤에 자리 잡은 청해사(옛 영주암)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이곳에서 300m를 오르면 정상이다. 거리는 짧지만 여간 가파른 길이 아니다. 정상에 서면 섬과 섬을 잇는 장보고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파란 바다 위에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다.

여행메모

장보고대교 연결로 완도 주요 섬 일주
완도 읍내에 전복 등 먹거리·숙소 즐비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 강진나들목에서 빠지면 빠르다. 23번 국도를 타고 강진 쪽으로 가면 마량항에 이어진 고금대교를 건너 고금도로 들어설 수 있다. 약산도와 신지도를 둘러본 뒤 신지대교를 건너 완도로 건너가면 된다. 강진나들목에서 해남 방면 18번 국도를 타고 완도 쪽으로 반대로 돌아볼 수도 있다. 서울에서 완도까지는 해남 쪽보다 강진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빠르다. 장보고대교로 연결되기 전엔 고금도에서 육로로 완도읍까지 가려면 강진∼해남∼완도로 돌아가야 해서 1시간 40분쯤 걸렸다. 이제 10∼20분이면 충분하다.

완도 읍내에 먹거리 타운이 조성돼 있다. 전복양식이 유명한 만큼 전복을 주 메뉴로 내거는 식당들이 많다. 완도항에서 신지대교 쪽으로 바다를 끼고 가다 보면 음식특화거리가 있다. 이곳에 횟집이 줄을 잇는다.

읍내에 완도관광호텔 등 다양한 등급의 숙소가 즐비하다. 신지도 명사십리 해변에는 세련되고 운치있는 펜션과 숙소가 여럿 있다. 바닷가 풍경은 덤이다.

삼문산 아래 동백숲 해변으로 이름난 가사해수욕장도 들러볼 만하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푸르름을 더한다.

완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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