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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변함없었던 대입 시험 날의 씁쓸했던 풍경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5일 서울 종로구 이화여자외고에서 수험생들이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윤성호 기자
 
조효석 기자


할머니는 손녀가 시험장에 들어가고 나서도 30분 넘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애처롭게 쳐다봤다. “젖먹이 적부터 내 데리고 와서 곱게 키운 손녀라. 지가 하고 싶은 거 하믄서 꼬옥 행복하게 살았으믄 좋겄어요.” 짧은 소회를 내뱉는 동안 70대 노인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수험생 임모양의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수험생 딸을 위해 ‘불낙죽’을 끓여 먹였다고 했다. ‘떨어지지 말라’는 뜻의 한자 ‘不落(불낙)’을 생각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초등학생 2학년 막내와 함께 시험장을 찾은 그녀는 딸이 시험실로 들어가는 내내 교문 창살을 붙잡고 손을 흔들었다. 차가운 교문을 애처롭게 쓰다듬는 부모는 한둘이 아니었다.

수험생 이모양은 오빠와 어머니의 배웅을 받았다. 세 사람은 정문에서 한참 동안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수에 성공해 지난해 대학을 간 오빠는 미소를 지었다.

“쌤, 어떡해요. 저 경찰 오토바이에 도시락 놓고 내렸어요.” 발을 동동 구르는 트레이닝복 차림 학생의 눈에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옆에서는 다른 한 어머니가 한참 동안이나 딸을 껴안은 채 안쓰러운 듯 쳐다봤다. 부모들은 시험장으로 자식의 뒷모습이 사라지기까지 하나같이 눈을 떼지 못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오전, 서울교육청 제15지구 제18시험장 이화여고 앞의 모습이다. 수능은 올해도 수험생 가족 모두가 치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수능날 풍경은 지금이나 수십년 전이나 다르지 않았다. 1969∼80년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치러졌을 때도, 81∼93년 학력고사가 치러졌을 때도 시험일 수험생과 그의 가족은 여전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94년 ‘주입·암기식 교육 타파’를 위해 도입된 수능제도도 이 모습을 바꾸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고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대입 제도 개선 방안이 나왔지만 단 하루 시험으로 당락이 정해지는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시험장 주변의 학부모와 학생들 얼굴에선 늘 절박함이 읽힌다.

정부는 지난 8월 어김없이 또 한 번 대입제도 개편방안을 내놨다. 대입 정시모집에서 수능 비중을 높이고 수능 과목은 국어·수학·직업탐구에 공통·선택형 구조를 도입하는 게 골자였다. 정부의 발표대로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미래의 수험생 가족들은 대혼란을 겪었고, 다시 전략 짜기에 돌입했다. 그들이 몇 년 뒤 다시 이 자리에서 들어섰을 때 이날 수험생 가족들과 비슷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대입제도 개편 방안은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 그 자체로 또 다시 극복해야 할 시험에 불과하다. 1등을 위해 새로운 제도에 적응해야 하고, 노하우를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한국사회 자체가 줄 세우기식 평가를 놓지 못할 경우 수능이 차지하는 위상은 달라질 수 없다. 수십만 앳된 청춘을 단 하루에 일렬로 줄 세우는 풍경은 그들이 조만간 겪게 될 어른들 세상의 시작점이다.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자녀를 자신의 논문 공저자로 기록한 교수들의 행위나 최근 문제가 된 쌍둥이 여고생 아버지의 불법 논란은 이 같은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우리 자녀들 역시 이를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기에 줄 세우기 경쟁에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옭아맨다. 수능날은 또다시 절박하고 처절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 재생된 수능날 풍경이 씁쓸하게 보이는 이유다.

조효석 사회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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