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1년 세계는 변화 중] 남녀 임금격차 폭로한 ‘페이 미투’ 바람 불었던 영국

영국 런던 메릴본의 BBC방송 본사 텔레비전하우스(Television House)를 지난달 29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발레리 휴스 디에스 BBC그룹 인사총괄임원. BBC의 남녀 임금격차는 8.4%로 영국 언론사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용기가 모든 곳의 용기를 부른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 밀리센트 포셋(1847∼1929)의 동상. 동상은 런던 웨스트민스터궁(의회) 광장에 지난 4월 세워졌다. 영국 의회광장에 여성 동상이 세워진 건 처음이다.






글 싣는 순서

① 미국 : 사회연대로 진화하는 미투
② 일본 : 불모지에 부는 변화의 바람
③ 스웨덴 : 성 역할 탈피 성중립교육
④ 영국 : 임금격차 해소 ‘페이 미투’
⑤ 한국 : 활발한 여성주의운동과 과제


“남녀 임금격차(gender pay gap)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해소하는 데 있어서 BBC방송은 최고가 될 겁니다. 2020년까지 남녀 임금격차를 완전히 없애는 게 목표입니다.”

세계 최대 공영방송사인 영국의 BBC는 남녀 임금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이다. BBC는 남녀 간 평균 임금격차를 지난해 10.7%에서 올해 8.4%로 줄였고, 고위 관리직 여성의 비율은 43.3%로 늘렸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평균 남녀 임금격차가 18%인 것을 고려하면 유의미한 변화다. BBC는 영국 언론사 중 가장 먼저 남녀 임금격차를 공개했다. BBC그룹의 발레리 휴스 디에스 인사총괄임원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한국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있었다면 영국에서는 남녀 임금격차를 폭로하는 ‘페이 미투(#PayMeToo)’ 바람이 불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2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4월 4일까지 남녀 임금격차를 공개토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올해 해당 기업 100%가 이 정책을 지켰다. BBC처럼 실제로 임금격차를 줄인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찾아간 런던의 BBC 본사 부근에서도 ‘남녀 임금격차를 인식하라(Mind the gender pay gap)’고 적힌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열차와 승강장 간격을 조심하라(Mind the gap)’는 지하철 안내방송을 패러디한 것이다.

영국에서 남녀 임금격차는 올해 초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남성 동료와의 임금 불평등을 이유로 캐리 그레이시 전 BBC 중국지부 편집장이 지난 1월 사임한 게 발단이 됐다. 전 테니스 선수이자 BBC의 윔블던 테니스대회 해설위원인 마르티에 나브라틸로바도 자신의 수당이 남성 해설위원인 존 매켄로의 10%에 불과하다고 폭로했다. 디에스는 “언론사인 BBC조차 직장 내 성차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개인이 남녀 임금격차를 고발하고 나서자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국 여성 하원의원 10명은 지난 4월 소셜미디어에서 단어 ‘페이 미투’에 해시태그(#)를 붙이며 남녀 임금격차를 항의했다. 여성 의원들의 초당적 협력은 영국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페이 미투의 타깃이 됐던 BBC는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시작은 인력 재배치였다. 디에스 인사총괄 임원은 “우선 시청률이 높은 방송프로그램에 여성 출연자 비율을 높였다”며 “다음 목표는 여성 임원 및 관리직 비중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BC는 회사를 여성 친화적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직원 5000여명의 의견도 수렴했다. 디에스는 “단순히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BBC 내 성차별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발맞추고 있다. 성평등 정책 입안을 담당하는 영국 정부 평등국은 지난 8월 남녀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행동지침을 발표했다. 정부 평등국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남녀 임금격차를 줄이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기업들이 많다”며 “고용주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효과적인 지침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왜 여러 성차별 문제 중 남녀 임금격차 해소에 집중하는 걸까. 정부 평등국 관계자는 “직장 내 성차별 해소는 국가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여성들이 경제적 잠재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조사 결과 남녀 임금격차 해소에 따르는 경제적 효과는 1500억 파운드(약 220조7100억원)에 달한다.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38%에 해당하는 수치다. 맥킨지는 “인력이 부족한 과학·기술 분야에 여성 진출을 늘리는 방법으로 임금격차를 줄인다면 분명히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서를 통해 설명했다.

영국 내 남녀 임금격차 해소를 향한 개인과 기업, 정부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영국 여성노동자 수천명은 지난달 23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남녀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이틀간 파업을 벌였다. 여성들이 과거에는 부당한 임금 차별을 받아도 침묵했다면 이제는 고용주에게 당당하게 임금 격차를 줄이라고 요구하게 된 것이다. 정부 평등국은 남녀 임금격차를 더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 연구를 위해 앞으로 2년간 31만 파운드(약 4억5300만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런던=글·사진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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