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신종수] 비타민C 외교



제주도 귤이 북한에 처음 대량으로 보내진 것은 1998년이다. 당시 민간주도 형식으로 100t(10㎏짜리 1만 상자)이 지원됐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5·24 조치로 남북교류가 중단될 때까지 4만8328t이 보내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비타민C 외교’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8년 만에 군 수송기 4대가 이틀간 북한에 귤 200t을 실어 날랐다. 비타민C 외교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물한 자연산 송이버섯 2t에 대한 답례 차원이라고 한다. 맛있다는 서귀포산 조생종 노지감귤로 크기 49∼70㎜, 당도 12브릭스(Brix) 이상에 당산비(단맛 대비 신맛의 비율로 높을수록 맛있음)도 높은 엄선된 것들이다. 10㎏ 한 상자에 도매가격으로 2만원, 대형마트에서는 3만5000원이다. 200t을 도매가격으로 환산하면 4억원, 소매가격으로는 7억원이다. 청와대 예비비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고 한다. 국내산 송이의 가격은 1등급 1㎏당 25만∼30만원으로 송이버섯 2t 가격은 귤 200t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귤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귤값이 폭등할 것이란 가짜뉴스까지 나오고 있지만 북한에 보낸 200t은 한 해에 생산하는 60만t에 비하면 전체 생산량의 0.03%에 불과하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연기되고 대북제재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지금 귤을 보낼 때냐고 비난한다. 홍준표 전 대표는 “귤 상자에 귤만 들어 있겠느냐”며 대북송금 의혹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과일 상자에 엉뚱한 것을 담는 건 한국당 전문”이라는 반론이 나오는 등 오히려 역풍만 불러일으켰다. 또한 귤 맛으로만 보면 11월이 가장 좋을 때여서 정치적인 타이밍은 몰라도 맛 타이밍은 좋다는 주장도 있다.

김 위원장과 제주도의 인연도 거론된다. 제주도는 김 위원장의 외할아버지 고경택의 고향이다. 1913년생인 그는 29년 오사카로 건너가 52년 고영희를 낳은 것을 비롯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뒀다. 이후 62년 가족을 데리고 북한으로 들어갔다. 고영희는 만수대예술단 무용가로 활동하다 72년부터 김정일과 동거해 정철·정은·여정 3남매를 낳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귤을 보낸 것은 북·미 관계 교착 속에서도 남북 평화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제주도를 꼭 한번 방문하라며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손짓이기도 하다.

신종수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