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 달래주는 ‘좋았던 시절 시티팝’의 복귀


 
요즘 가요계에는 도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시티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최근 시티팝 계열의 음악을 내놓았던 가수 윤종신 유빈 뮤지 한희준(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시스, 각 소속사 제공


최근 가요계에 ‘시티팝(city pop)’이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윤종신이 대표 주자다. 그는 지난해 7월에 출시한 ‘웰컴 섬머’에 이어 ‘마이 퀸’ ‘섬머 맨’ 등 이 계통의 음악을 여러 차례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인 유빈이 내놨던 ‘숙녀’, 뮤지의 ‘컬러 오브 나이트’, 한희준의 ‘스타리 나이트’ 등 음반 설명에 시티팝이라고 소개한 사례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시티팝은 1980년대 초 일본에서 생겨났다. 특정 장르라기보다는 이 무렵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성행한 세련된 대중음악을 두루뭉술하게 일컫는 포괄적 용어다. 시티팝의 ‘핵심 인자’로는 소프트록, 어덜트 컨템퍼러리, 스무드재즈, 컨템퍼러리 R&B 같은 장르를 꼽을 수 있다. 부드러운 선율과 잔잔한 리듬이 특징인데, ‘시티(city)’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도시에서의 근사하고 낭만적인 삶을 그려낸 경우가 많다.

90년대 시티팝은 하우스 등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인기와 맞물려 생겨난 장르인 ‘시부야케이(Shibuya-kei)’에 밀려 조용히 자취를 감췄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히토미토이, 서치모스, 오섬 시티 클럽, 세로 등 많은 뮤지션이 연달아 시티팝과 닮은 노래들을 출시하면서 살아나게 된다. 유행은 시간을 두고 순환함을 시티팝 복원 현상이 다시 보여줬다.

이런 움직임을 유발한 배경은 시티팝 특유의 말쑥한 모양새와 느긋한 분위기가 뿜어내는 향수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문화재단과 음악 콘텐츠 스타트업인 스페이스오디티는 ‘디깅클럽서울’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뮤지션들이 한국의 시티팝을 발굴해 재해석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로 R&B 가수 죠지가 김현철의 89년 노래 ‘오랜만에’를 리메이크했다. 다음으로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87년 출시된 이재민의 ‘제 연인의 이름은’을 윤색해 선보였다. ‘제 연인의 이름은’은 시티팝 범주에 넣기 애매하지만 이 곡을 선정한 것은 참신한 사운드를 연출한 옛 음악에 대한 애정이자 경배일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의 시티팝 리바이벌 열기는 과거에 대한 추억에 바탕을 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티팝은 부(富)를 입고 탄생한 음악이었다. 80년대 일본이 비약적 경제 성장을 맞이함에 따라 일본 음반사들은 최고급 음향 장비를 사들이고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연주자와 엔지니어를 초대해 스무드재즈나 소프트록 음반을 제작했다. 이런 작품들이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자 자국 뮤지션들이 그와 유사한 음악을 만든 게 시티팝의 시작이었다.

일본 경제는 최근 들어 다시 좋아지고 있다. 일본의 젊은 뮤지션들은 풍요로웠던 지난날을 되새기면서, 그때 유행한 장르를 통해 다시 돌아온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유행은 조금 다르다. 대체로 복고는 불황에 편승한다. 사람들은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근심이 적었거나 본인한테 좋은 기억을 안겨 준 과거를 떠올림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세상은 연일 화려해지고 있음에도 많은 이가 피로감과 불안감을 호소한다. 이 정서적 피폐함을 경제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80년대의 음악으로 달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다시 흐르는 시티팝의 고급스러운 외양 안엔 서글픈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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