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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교훈은 화합과 평화”… 각국 정상 추모·애도

서아프리카 베냉 출신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안젤리크 키조가 11일(현지시간)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참전자를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1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정상인 메르켈 총리(왼쪽)가 10일 1차대전 정전협정이 이뤄진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에서 승전국인 프랑스의 정상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이마를 얼굴에 대며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다. AP뉴시스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이 11일(현지시간) 종전 100주년을 맞았다. 한때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 정상은 한 세기 전 휴전협정이 체결된 장소에서 만나 밀월을 과시했다. 참전국 정상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화합과 평화를 기원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 1차대전 참전국 정상들은 오전 파리 개선문과 샹젤리제거리 일대에서 열린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행사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각국 정상만 70명에 달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설에서 “100년 전 오늘 파리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서 휴전이 이뤄졌다. 끔찍했던 4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면서 “프랑스 전역과 외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이름도 모를 마을을 지키다 죽어갔다”고 말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민족주의는 애국이 아니다”라며 “자신들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며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 나라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면전에서 비판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차대전을 유발한) 과거의 악령들이 되살아나고 있다”고도 말했다.

기념행사는 추모와 애도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고교생들은 각국 정상들 앞에서 100년 전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남긴 증언을 낭독했다. 프랑스와 미국, 독일 병사는 물론 후방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 약혼자를 전선에 보낸 프랑스 여인의 목소리도 담겼다. 서아프리카 베냉 출신 싱어송라이터 안젤리크 키조는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병사들을 추모하는 노래를 불렀다. 중국계 미국인 첼로 연주자 요요마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정상들은 엘리제궁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함께 출발해 샹젤리제거리를 직접 걸어 개선문에 마련된 기념식장까지 이동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경호상의 이유를 들어 전용차 ‘더 비스트’를 타고 따로 움직였다. 기습 시위로 유명한 여성단체 ‘페멘(FEMEN)’ 회원들이 상반신을 노출한 채 트럼프 대통령 차량 앞에 뛰어들려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정상들이 단상에 모두 정렬한 뒤에야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등장했다. 이어 약속시간에 늦기로 유명한 푸틴 대통령이 가장 마지막으로 나왔다. 두 ‘스트롱맨’ 때문에 각국 정상들은 수분 동안 서서 기다려야 했다. 당초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오찬장인 엘리제궁에서 잠깐 면담했다.

정상들은 이어 마크롱 대통령 주최 행사인 파리 평화포럼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럼에 가지 않고 곧바로 귀국했다. 개방과 관용, 다자주의 등 행사 주제가 미국의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고 보고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파리 도착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 유럽군 창설 필요성을 강조한 것을 두고 트위터에 “미국 중국 러시아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겠다는 것으로, 아주 모욕적”이라며 “유럽은 먼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분담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기념일 하루 전인 10일 1차대전 휴전협정이 이뤄진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을 함께 찾았다. 독일 정상이 콩피에뉴 숲을 찾은 것은 2차대전 중이던 1940년 6월 이곳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프랑스의 항복문서에 서명한 이후 78년 만이다. 마크롱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당시 열차를 재현한 기념관에서 방명록에 공동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같은 날 엔-마른 미군묘지를 참배하기로 돼 있었지만 일정을 취소했다. 비가 오고 구름이 낮게 깔려 헬기가 뜰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정상이 1차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미군 전사자 추모를 하지 않은 것은 악천후로도 핑곗거리가 될 수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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