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만들기 쉽다고요? 부담 더한 새로운 창작이죠”

KBS 2TV 드라마 ‘최고의 이혼’을 연출한 유현기 PD. 일본 드라마가 원작인 이 드라마는 색다른 각색과 세련된 연출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최고의 이혼’에 등장하는 장면들. KBS 제공


‘리메이크’가 거의 드라마 장르 중 하나가 됐다. 해외드라마 영화 만화 등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첫선을 보인 ‘최고의 이혼’(KBS2)은 2013년 후지 TV에서 방영된 동명의 일본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일본 유명 드라마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걸작으로 제76회 드라마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등 주요 상들을 휩쓸었다. 한국판의 시청률은 3% 내외로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두 연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가슴을 울리는 대사와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내면서 “세련된 드라마”라는 호평을 얻고 있다.

원작이 있다는 점에서 리메이크작은 ‘만들기 쉽다’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최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만난 ‘최고의 이혼’ 유현기 PD는 “리메이크는 많은 부담이 따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일본 만화를 리메이크한 ‘공부의 신’을 연출한 적 있는 유 PD는 “원작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 모두를 만족 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원작을 가져와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리메이크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원작의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한국적인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 사랑의 본질을 다룬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있다고 봤다”고 했다.

캐릭터와 공간적 설정 등 기본적인 뼈대는 원작에서 가져왔다. 까칠하고 예민한 조석무(차태현)와 반대로 아내 강휘루(배두나)는 느긋하고 낙천적이다. 진유영(이엘)과 남편 이장현(손석구)도 원작 인물들과 성격이 유사하다. 이들이 한동네에 같이 살게 된다는 설정도 같다.

여기에 한국적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거쳤다. 일본 드라마에서는 인물들이 더 개별적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는 유 PD는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정서적이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물들의 직업에 변화를 주고, 내밀한 가정사 등을 추가한 건 이 때문이다.

“원작에서 휘루는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고 수동적이다. 여기서는 동화작가를 꿈꾸는 주체적인 인간이다. 석무도 여전히 까칠하지만, 원작보다 훨씬 정이 많은 인물로 그려진다. 또 가족 얘기와 과거사를 원작보다 깊게 풀어내서 상처를 간직한 주인공들의 행동과 성격이 설득력을 갖추길 바랐다”고 소개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건 휘루의 동생 강마루(김혜준)라는 캐릭터다. 원작엔 없는 인물로 극 중 주수경(하윤경)과 옥탑방 룸메이트가 된다. 유 PD는 “둘의 이야기를 통해 부부의 고민뿐 아니라 같이 사는 모든 사람의 얘기까지 확장해 다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고의 이혼’은 사건 중심의 기존 드라마들과 달리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색다르게 느끼는 이유다. 유 PD는 “대본이 굉장히 문학적이고 연극적”이라면서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함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4명이 함께 나오는 장면을 보면 마치 관객석에 앉아서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함축적인 대사들이 많아서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곱씹어 볼수록 깊은 맛이 있다. ‘최고의 이혼’이 기혼·미혼·비혼 여부에 상관없이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시청자를 향한 그의 바람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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