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1년 세계는 변화 중] 인형놀이 남자아이, 진흙놀이 여자아이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페어러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지난달 25일 유리병에 담긴 물에 여러 색의 물감을 섞는 놀이를 하고 있다. 성중립 교육을 실시하는 이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미술 시간에 교사들이 개입하지 않는다. 부모 동의 없는 미취학아동 얼굴 노출을 금지하는 스웨덴 법률에 따라 아이들 얼굴은 공개하지 않는다. 시페어러스 유치원 제공
 
스웨덴 성평등 전문가 잉마르 겐스(왼쪽)와 앨리스 스토레순드.






글 싣는 순서

① 미국 : 사회연대로 진화하는 미투
② 일본 : 불모지에 부는 변화의 바람
③ 스웨덴 : 성 역할 탈피 성중립교육
④ 영국 : 임금격차 해소 ‘페이 미투’
⑤ 한국 : 활발한 여성주의운동과 과제


스웨덴 스톡홀름 남부 외곽 하마뷔허이덴의 시페어러스 유치원에서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인형을 가지고 노는 남자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여자아이들은 바지에 진흙을 잔뜩 묻힌 채 유치원 곳곳을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남자아이’ ‘여자아이’ 대신 ‘친구’ ‘친구들’로 부른다. 이른바 ‘성중립 교육(Gender Neutral Education)’을 도입한 유치원의 모습이다.

성평등 선진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에는 아이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도록 성중립 교육을 실시하는 유치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요하는 기존의 교육이 성차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성중립 교육을 도입한 이유다. 성차별 구조는 필연적으로 성별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결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과 성폭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성중립 유치원’은 스웨덴의 전체 유치원 중 10% 정도다.

스웨덴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 조사 결과 세계에서 성평등지수 5위를 기록했다. 가장 먼저 ‘그(He)’와 ‘그녀(She)’ 대신 성중립 대명사 ‘헨(Hen)’을 사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스웨덴은 성중립 교육을 통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5일 스톡홀름에서 성평등 전문가 잉마르 겐스와 앨리스 스토레순드를 만나 성중립 교육에 대해 들었다. 기자 출신의 겐스는 처음 성중립 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한 인물이다. 스토레순드는 시페어러스 유치원 교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을 주입시키지 않고 아이들을 그저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스웨덴 성중립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초창기 성중립 교육은 남자아이에게 여성성을, 여자아이에게 남성성을 가르치는 게 골자였다. 최근의 성중립 교육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버리는 게 목표다. 그러려면 교사들부터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페어러스 유치원에서 교사들은 유치원 내 교육 모습을 매일 촬영해 다음 날 함께 보며 성차별적인 언행은 없었는지 토론한다.

예컨대 교사가 남자아이에게 맞은 여자아이를 향해 “너한테 관심 있어서 때린 거니까 참아”라고 말한 장면에선 “남성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피해를 입은 여성은 침묵해야 한다는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발언”이라는 의견이 오간다. 스토레순드는 “교사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중립 교육으로 인한 변화는 아이들의 옷차림에서부터 나타난다. 최근 시페어러스 유치원에서는 드레스를 입고 오는 남자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온 한 남자아이는 “여동생이 입은 드레스가 멋지게 보여서 입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토레순드는 “성중립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남자 것과 여자 것을 나누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왜 유치원 때부터 성중립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할까. 겐스는 “인간은 태어난 후 5년이 성격을 결정하는 시기로, 이 시기 교육이 중요하다”며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토레순드는 “인간은 스스로 정의할 권리가 있다”며 “어릴 때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강요하면 그 권리를 빼앗는 셈”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국공립유치원에 진학하고, 교사 1명당 최대 3∼4명의 아이를 돌보는 스웨덴의 선진적인 교육 환경도 성중립 교육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물론 성중립 교육의 한계도 존재한다. 남성은 ‘힘’, 여성은 ‘공감’으로 대표되는 사회 분위기를 거스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겐스는 “남성성을 배우는 여성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남성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회에서 남성처럼 행동하는 여성들은 성공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은 무시당하거나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스토레순드는 “남성이 여성성을 배우는 것은 큰 도전이고, 스웨덴에서도 순탄하지만은 않다”고 했다.

성중립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사람이 성별 같은 특정 기준에 따라 차별받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스토레순드는 “성중립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최소한 성별로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매일 배우는 셈”이라며 “성중립 교육의 방식이 인종과 종교, 나이, 성 정체성, 장애 여부 등으로 확산되면 그 의미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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