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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속 세상] 8세·13세 고아 자매 ‘희망을 보다’

눈을 뜬 세상에는 원치 않았던 길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돌멩이가 난무하는 비포장도로입니다. 세상은 내게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주질 않습니다. 힘겹게 옮긴 발걸음에 모난 돌멩이들은 돌아가라 으름장을 놓습니다. 함께 걸었던 친구들은 신발과 함께 저만치 떨어졌습니다. 상처가 난 발에 새 살이 돋았습니다. 이제 돌멩이는 절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뛰었습니다. 겨우 따라잡았더니 현실이라는 높은 벽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간절한 희망은 절 벽 너머로 이끌어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녀 마틸다(왼쪽 사진)는 어린 동생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다. 취재하는 내내 그는 웃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경계심과 고독, 슬픔 등의 감정이 혼재돼 있었다. 동생 자넷(오른쪽)은 그런 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맑고 순수한 눈망울로 렌즈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이들은 일상인 듯 얼굴에 붙은 파리를 애써 떼어내려 하지 않았다.
 
마틸다가 마을 주민의 밭일을 돕고 있다. 그는 “(방과후)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해요. 동생을 먹여야 해요. 저는 부모님이 돌아오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고 했다(위쪽 사진). 마틸다가 미궁가 초등학교에서 문제를 풀고 있다. 그에게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학교에 있을 때 뿐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입학 후 지금까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꿈은 의사다. 병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환자들이 제때 약을 챙겨 먹을 수 있게, 그래서 오래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가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마틸다는 하루에 한 끼 식사조차 보장되지 않는 삶 속에서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마틸다(13)와 자넷(8) 자매는 아프리카 최빈국에 속하는 부룬디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인 루타나주에 살고 있다.

“정말 이런 곳에 산다는 말이야?” 이들의 집을 처음 방문했던 날의 충격은 생생하다. 자매는 가로 2m, 세로 2.5m의 흙벽돌로 된 방에 닭 3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방 안 곳곳은 모닥불을 피운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밤마다 추위를 이기려 애쓴 흔적이었다. 축사를 개조했다지만 축사와 다를 바 없었다.

마틸다에게 올해 1월 1일은 가혹했다. 세상에 남은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다. 그는 8년 전까지 탄자니아 난민촌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 동생 자넷을 낳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함께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부룬디로 오게 됐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최선을 다했던 아버지가 그날 사망했다. HIV 보균자였던 아버지는 궁핍한 생활 탓에 약을 제때 챙겨 먹지 못해 결국 숨졌다. 마틸다는 차갑게 식은 아버지 주검 앞에서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초등교육 졸업반인 마틸다는 어린 동생 자넷을 보살피는 가장이 되었다. 새벽 6시에 물을 긷고 등교해 낮 12시 하교와 함께 마을 주민들의 잡일을 돕는다. 해가 지기까지 꼬박 6시간을 일하면 10알의 카사바(고구마의 일종)를 받는다. 일이 없어 하루에 한 끼도 못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의사가 돼서 사람들이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열악한 환경에서도 마틸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부유한 삶이 아니다. 오로지 학업에 대한 열망이다. 마틸다는 입학 후 지금까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올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해다. 부룬디는 초등교육 6년까지 무상 교육이 시행된다. 중등교육은 상상할 수 없는 먼 이야기. 신발 한 켤레도 없어 맨발로 다니는 그에게 중학교 등록금과 교복은 꿈꿀 수 없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틸다는 말한다. “저같이 고아인 아이들을 만나면 희망과 인내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미래에는 분명히 좋은 일이 일어날 거예요.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세요. 그 믿음은 희망으로, 희망은 우리의 삶에서 빛날 거예요.”

루타나(부룬디)=사진·글 윤성호 기자 cybercoc@kmib.co.kr

▒ 국민일보 창간 30주년 사진전 ‘희망을 보다’
13∼18일 갤러리 류가헌


국민일보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월드비전과 함께 사진전 ‘희망을 보다’를 개최한다. 이번 사진전은 지난 6월 본보 김지훈 기자, 윤성호 기자가 ‘밀알의 기적’이라는 기획 취재를 겸해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이규호 목사(큰은혜교회)와 함께 찾은 아프리카 동부 우간다와 부룬디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한 사진 40여점을 선보인다. 내전과 가뭄, 굶주림과 질병 가운데 놓인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평안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나눔의 기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사진전은 오는 13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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