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우리 삶은 외줄타기

박민준 ‘Rapu-중력’. 2018, Oil on canvas, 갤러리현대


가냘픈 체구의 소년 곡예사가 고공에서 줄을 탄다. 안전장치라곤 평형을 잡는 기다란 봉이 전부다. 줄타기에 집중해서일까. 강렬한 조명에 비친 곡예사의 눈이 감겨 있다. 공중에서 감각만으로 줄을 타는 곡예사를 그린 작가는 박민준(1971∼)이다. 2003년부터 줄타기 그림을 그려왔다. 우리의 삶이 외줄타기나 마찬가지라고 믿는 작가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좌우로 흔들리듯 나 또한 작가로서 다양한 것들에 흔들려왔다. 그때마다 늘 균형을 생각해 왔다”고 했다.

데뷔 이래 서구 고전회화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회화로 주목받아온 박민준은 이번에 모험을 시도했다.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제안 받고, 오랫동안 곰삭혀 왔던 서커스 주제의 대형 유화와 조각, 설치미술로 신묘한 상상극장을 선보인 것. 3개 층의 전시장을 마치 서커스 무대처럼 꾸미고, 인간 삶의 불가사의한 여정을 마술적 사실주의로 장대하게 풀어냈다. 현실과 환상,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든 실험은 모처럼 만나는 판타지여서 흥미롭다. 그뿐 아니다. 작업과 짝을 이루는 ‘라포르 서커스’라는 소설책도 펴냈다. 비극적 운명체인 쌍둥이 곡예사가 주인공인 소설은 애잔한 서사와 꿈의 세계가 씨줄날줄처럼 엮여져 감동을 더해준다. 이쯤 되면 박민준은 재능 많은 이야기꾼이자 멀티아티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회화다. 대학원 재학시절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를 보고 “그림 한 점으로 이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니”하고 탄복한 이래 리얼리즘 작업에 천착했고, 그 결과 정교하면서도 날이 선 회화로 국내외에서 성가를 높여왔다. 속사포처럼 퍼지는 팝아트와 디지털아트의 물결 속에서 박민준의 그림은 회화의 가치와 마력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