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지금, 미술]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왕따시킨 예술가의 창작 혼

민성홍 작가가 개인전 ‘연속된 울타리’가 열린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씨알콜렉티브 전시장에서 ‘안테나 새’ 설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지훈 기자
 
‘안테나 새’, 석고,나무,금속파이프,모터,비닐, 2018년 작. 작가 제공
 
설치 작품 ‘러닝 펜스’. 작가 제공
 
영상 작품 ‘펜스 어라운드’의 스틸 컷. 작가 제공


10년 전쯤 일이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다가 재취업에 성공했던 대학 선배가 전하는 일화. 점심시간이 다 돼 어떡해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자신만 쏙 빼고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일어서 나가는 게 아닌가. 누구의 입에서도 ‘밥 먹으러 갑시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었다. 자신이 일터에서 사라진 사이, 저마다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깔리기 시작한 노란색 아이콘, ‘카카오톡’을 통해 ‘중고 신입’을 왕따시켰던 것이다.

사이버 정글의 시대다. 카카오톡 같은 사이버 채팅방의 위력도 커진다. 소위 ‘단톡방’은 거기에 속한 멤버들끼리 친밀한 왕국을 형성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국경을 긋는다. 그 선배가 당한 예는 비근하지만, 도가 지나쳐 성적 희롱이 일어나거나 집단 왕따의 무대가 되면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한 사회의 주력 집단이 자신들만의 자장(磁場)을 형성하며 소수자를 접근 금지시킨 문화는 아주 오래됐다. 단톡방은 우리 안에 잠복한 왕따 심리를 아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내심 반가운 무기가 아닌가 싶다.

단톡방 문화와 시장통의 생선가게 이미지가 오버랩 된 건 민성홍(46) 작가의 설치 작품 때문이다. 전시장엔 후줄근한 막대기가 빙빙 돌아간다. 끝에는 닳아빠진 수술이 달렸다. 생선에 파리가 끓지 않도록 양팔을 벌리듯 막대기 끝에 수술을 매달고 빙빙 돌아가는 생선가게의 ‘회전 파리채’, 딱 그것이다.

‘당신은 신선한 생선을 오염시키는 파리 같은 존재, 그러니 절대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렇게 일상에서 우리끼리의 구획을 긋고, 누군가를 그 경계 밖으로 내몰며 호호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잠시, 갑자기 파리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됐다. 다른 곳에서는 경계 안으로 돌진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파리처럼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경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그의 작품 ‘안테나 새’는 최근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복합문화공간 씨알콜렉티브에서 가졌던 개인전 ‘연속된 울타리’에서 선보였다.

지난달 말 종료된 이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거듭 보다 보면 슬픔의 정조가 배어나온다. 왜일까.

왕따는 당하기도 하지만 때론 불가피하게 스스로 선택할 때가 있다. 서울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로 유학 간 그는 현지에서 활동하다 2010년 귀국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도 태어났다.

한국 생활이 어영부영 몇 년째 이어지던 2014년의 어느 날, 예술가로서의 앞날에 초조해하던 그는 아내와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합의했다. 일본인 아내와 아들은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갔다. 그는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에 들어갔다. 경기도의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당선된 것이다. 고시생이 된 심정으로 그 섬에서 3년을 보냈다.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팔을 빙빙 돌리며 가족을 밀어내야 했던 기러기 아빠의 슬픔. 그의 설치 작품에서 세태 고발의 언어가 아니라 어떤 비애가 느껴진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이후 각종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의 뼈대는 자신을 격리시킨 대부도에서의 3년 동안 탄생했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때 미술 시간에 소원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글쎄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을 그렸대요. 머리에 헬리콥터를 달고 아빠가 있는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다고….”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났다. 그의 작품은 생존을 위해 왕따를 자처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40대 가장, 예술가의 슬픈 초상처럼 다가왔다.

다른 방식으로 경계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들도 있다. 지난해 3개월간 프랑스 파리의 시테 국제 레지던시에 머물 때 제작한 영상작품 ‘펜스 어라운드’도 그렇다.

‘탁, 탁, 탁, 타닥, 타닥…’. 울타리 너머로 도심 풍경이 펼쳐진다. 막대기에 스마트폰을 매달고 파리 중산층이 사는 그 동네 곳곳의 울타리를 쓱 훑으며 영상을 찍은 것이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보라. 어딘가로부터 밀려나 외로울 때 우린 그런 장난을 했다. 유럽에서 동양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울타리는 이방인에게 쳐진 장벽이었다. 콘크리트로 차단한 게 아니라 오히려 훤히 드러낸 채, 그러면서도 다가오지 못하게 박은 울타리….

아예 철조망 울타리 자체를 설치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런 울타리나 회전 설치 작품에는 바퀴가 달렸다. 새의 부리가 매달려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훌쩍 날아가는 새, 여기저기 맘껏 이동하는 바퀴. 그런 상징적인 장치들은 어서 성공해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달려가고 싶은 그의 마음, 혹은 우리 사회가 계층 이동이 자유로운 사회이기를 바라는 시민으로서의 소망에 대한 은유일 수 있겠다.

그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모두 초청이 됐다. 작가로서는 연타석 안타를 날렸다. 그럼에도 아직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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