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유도하는 사비나미술관 새 둥지

서울 은평구 진관로에 미술관 전용 건축물을 지어 이전한 사비나미술관 외관. 사비나미술관 제공


사립미술관의 ‘맏언니’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이 개관 22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시대를 마감하고 은평구 진관로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사비나미술관은 신축 재개관 기념전으로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를 마련해 지난 1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신축 미술관은 절정의 가을 단풍이 유혹하는 북한산 코밑에 있다. 연면적 1740㎡ 5층 신축 건물은 삼각형 형태의 ‘못난이 부지’를 장점으로 살렸다. 천변을 낀 모퉁이에 들어선 흰 세모 건물은 지역의 랜드마크로도 손색이 없다. 1층 카페, 2·3층 전시장, 4층 사무실, 5층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인다.

미술계 관계자는 5일 “40대 후반에서 60대 중견작가들의 경우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여서 오히려 신인보다 전시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사비나미술관은 그런 중견작가들에게 초대전을 열어 지속적으로 전시 기회를 줬다”면서 “인사동 시절은 공간 자체가 협소한데다 사무용 건물을 개조한 것이라 미술관 전시에 맞춤한 공간은 아니었다. 이번 건축은 미술관 전용으로 설계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재벌 미술관이 아닌, 재정 상황이 열악한 개인 미술관임에도 지속적으로 기획전을 열어왔기에 미술계가 진관로 시대에 거는 기대는 뜨겁다.

개관전은 대중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주제를 택했다. ‘예술가의 명상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28인이 참여했는데, 공감과 위로를 원하는 지금 사회에 명상에서 답을 찾으라고 말하는 듯한 전시다.

신문지에 볼펜과 연필로 수없이 그리기를 반복함으로써 수행의 흔적을 담은 원로 작가 최병소의 작품 등 감상만으로 몰입과 사색을 유도하는 작품이 많다. 간간이 관객 참여형 작품을 섞어 ‘나는 어디 서 있는가’를 묻게 한다. 이탈리아 작가 이벨리세 과르디아 페라구티는 중국 소림사의 무술과 채찍술 훈련에서 영감을 얻은 퍼포먼스 영상작품을 내놓았는데, 관람객도 직접 벽에 채찍을 치면서 그 소리와 각자의 몸짓에 몰입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미술관은 개관전의 일환으로 러시아 설치예술가 레오니드 티쉬코브의 개인전도 마련했다. 작가는 북극, 뉴질랜드,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설치 프로젝트인 ‘사적인 달(Private Moon)’을 진행하며 인공 달이 가져다주는 초현실적인 동화 같은 세계를 선보였다.

이번엔 사비나미술관 옥상 끝에 초승달을 매달았다. 흰 삼각형 건물 끝에 매달린 초승달이 시심(詩心)을 자극하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개관전은 내년 1월 31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