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함이 녹아 있다 돌아온 레전드 영상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박미달 역을 맡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배우 김성은(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KBS ‘개그콘서트-달인’의 콤비 김병만(왼쪽)과 류담. 방송화면 캡처


“스토리는 내가 짤 거고, 글은 누가 쓸래?”

오미선(박미선)이 순풍산부인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말한다. 방학 내내 펑펑 놀기만 하던 미달이. 개학 전날에서야 모범생 의찬이에게 일기를 써야 한다는 걸 듣게 된다. 가족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밀린 43일치 일기를 쓰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일기가 방학 숙제의 끝이 아니란 걸 곧 알게 되는데….

1998년부터 약 3년간 SBS에서 방송한 일일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중 일부다. 무려 682회에 달하는 이 작품은 한국 시트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 중 하나다. 순풍산부인과 가족들의 일상을 오지명 선우용녀 박영규 등의 특색 있는 캐릭터와 버무려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방영한 지 수십 년에서 수년은 지난 ‘레전드 영상’들이 새삼 화제다. 유튜브를 통해서다. 지난 6월 27일 SBS 공식 유튜브 계정인 SBSNOW에 올라온 ‘미달이의 방학숙제’ 클립 영상은 지금까지 250만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채널이 제공하는 ‘추억의 시트콤’ 섹션에는 ‘순풍산부인과’와 그 아들 격인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클립 영상이 매주 업로드되는데 몇만 조회 수는 기본이다. 100만이 넘는 것도 적지 않다.

SBSNOW 관계자는 “옛날 작품들을 보고 싶다는 의견들이 많아 시작하게 됐다”며 “네티즌들이 남기는 요청 댓글들을 반영해가며 작품을 선정하고 업데이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튜브는 미디어 유통의 주요 창구가 됐다. 방송사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으로 유튜브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과거 인기 시트콤과 개그 프로그램은 짧게 가공하기 좋고, 향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성맞춤이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LP 음반이 다시 유행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세련됨은 덜하지만 아날로그적인 푸근함과 향수가 매력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방송사 입장에서도 기존 콘텐츠라는 점에서 부담이 덜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MBC 유튜브 채널 MBCdrama 등을 통해 올라오는 ‘지붕 뚫고 하이킥’ 영상의 인기도 같은 문맥이다. 심통이 나면 “빵꾸똥꾸”라는 말을 서슴없이 외치는 정해리(진지희) 관련 영상이 유독 인기가 많은데, 올라온 지 약 2달 만에 300만을 웃도는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도 있다.

KBS도 ‘레전드 영상’에 특화된 유튜브 채널을 최근 2개 론칭했다. 코미디 전문 채널 ‘크큭티비’와 80∼90년대 추억의 가요 무대를 볼 수 있는 채널 ‘Again 가요톱10’이다. 특히 지난달 8일 개국한 ‘크큭티비’는 ‘유머 일번지’부터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영상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영상을 통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콘텐츠들이 웬만한 유튜버들의 영상보다 많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영상이 가진 향수에 더해 특별한 페이소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논스톱’(MBC·2000∼2005년)에는 요즘 대학생들과는 다른 삶의 모습이 그려지고, ‘순풍산부인과’에는 가족 공동체의 삶이 담겨있다”며 “이런 부분들이 정서적인 호소력을 갖추고 있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