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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용백] 상소리



살다보면 때와 장소, 분위기에 적합하지 않은 언행은 소통 장애를 일으키며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특히 농담(조크)을 했는데 정색을 하며 사실(다큐)로 받아들이는 상황은 심각해진다. 개인 간은 물론 국가 간 공식 석상에선 더욱 그렇다.

옥류관 평양냉면은 ‘상소리(거칠고 상스러운 말이나 소리)’를 함께 떠올리게 됐다. 지난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 평양 옥류관 오찬행사 당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언동이 뒤늦게 파란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지난달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리 위원장의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발언에 대한 확인이 있었다. 그가 난데없이 대기업 총수들의 냉면 먹는 자리에 와 정색하고 내뱉은 것이란 주장이 논란을 일으켰고 정치권 안팎으로 확산됐다. 남측 재벌 총수들에게 핀잔을 줬다, 아니다에서 농담이다, 아니다로 넘어갔다. 그의 언동들이 추가로 드러나며 일파만파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그의 발언에 대해 “상소리도 이런 상소리가 있을 수가 없다”고 격하게 비난했다. ‘무례’ ‘오만’ 등의 외교적 표현보다 좀 더 나갔다. 우리말 접두어 ‘상(常)-’은 양반(兩班)과 평민을 아울러 일컫는 ‘반상(班常)’ 개념에서 출발한다.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오랜 유교적 전통과 계급사회 풍속을 반영한 표현들이 있다. ‘상스럽다’ 등등이고 센 표현은 ‘쌍-’이 된다.

논어 안연(顔淵)편에서 공자는 인(仁)을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위해 “비례물시(非禮勿視·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비례물청(非禮勿聽·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비례물언(非禮勿言·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비례물동(非禮勿動·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이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이었다. 고도의 정치·외교적 언동과 수사가 난무할 수 있다. 리 위원장의 언동은 고의성이 다분함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과 리 위원장은 말이 없는데 우리끼리 너무 정색을 하고 시비에 집착하는 듯해 민망하다. 우린 물언(勿言)과 물동(勿動)을 견지하며 남북 당국자들로 하여금 외교적 원칙과 격식들을 간과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북한과 리 위원장은 지금 이런 상황을 웃으며 지켜볼까, 심각하게 지켜볼까.

김용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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