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별세] 엄앵란 “뼛속까지 영화인”… 영원한 맨발의 청춘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 524편 출연 주연만 507편
대종상 등 수상경력 화려, 영화계 성공 발판 정계 진출도
지난해 6월 폐암 판정 투병, 지난달까지 영화제 참석 ‘열정’


‘원조 미남배우’였던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이 4일 파란만장한 삶의 결승선에 도착했다. 향년 81세.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오전 2시30분 숨을 거뒀다.

생전 고인은 자기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모두들 내가 잘생겨서 쉽게 성공한 줄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인생이란 마라톤을 맨발로 뛰었다.”

고인은 1960∼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배우였다. 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맨발의 청춘’(1964) ‘안개’(1967) ‘별들의 고향’(1974) ‘겨울 여자’(1977) ‘길소뜸’(1986) 등의 인기 영화에 출연해 독보적인 스타로 군림했다. 고인의 출연 작품 수가 이를 뒷받침한다. 고인이 출연한 영화는 524편이고 이 중 주연을 맡은 영화만 507편이다. 64년 한 해에만 32편, 65년엔 34편, 66년엔 46편에 출연했다. 한국 영화 185편이 제작된 67년에는 무려 51편에 출연했다. 상대 여배우만 119명에 달했다. “한국 영화는 신성일이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 2개로 나뉜다”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대종상영화제에서 두 차례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등을 받았다. 영화 관련 단체 활동도 활발히 했다. 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94년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영화계 성공을 발판으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81년과 96년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두 번 다 낙선했다. 삼수 끝인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이 그의 조카다.

고인은 아내이자 유명 영화배우였던 엄앵란과의 결혼 생활로 자주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데뷔작에서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은 64년 서울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팬 4000여명이 무작정 결혼식장을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75년부터 별거했다.

고인의 외도가 문제였다. 그는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한 여성과의 충격적인 연애담을 공개했다. 발간 당시 그 여성에 대해 “○○○는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연인이다. 외국에서 주로 만남을 가졌고 내 아이를 낙태한 적이 있다. 나는 엄앵란도 사랑했고 ○○○도 사랑했다”고 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엄앵란은 고인과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왔다. 엄앵란은 “몇 개월 못 살고 이혼하는 (배우)선배들을 봤기 때문에 그런 딴따라의 이미지를 깨겠다, 죽어도 가정은 지키겠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병마가 찾아오면서 말년의 두 사람은 동지 같은 관계가 됐다. 엄앵란이 2015년부터 유방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고인이 그 옆을 지켰고, 고인이 지난해부터 폐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엄앵란이 병원비를 댔다.

엄앵란은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 한 언론의 질문에 “저승에 가서는 그저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손잡고 구름 타고 그렇게 슬슬 전 세계 놀러 다니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딸들이 엄마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참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했다’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엄앵란은 “남편은 집안의 남자가 아니라 대문 밖 남자였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나한테 다 맡기고, 영화만 하러 다녔다”고 회고했다. 또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 얘기를 하더라. 이런 사람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좋은 한국 영화들이 나오는구나 싶어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고 했다.

고인의 마지막 공식 활동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이었다. 투병 중에도 세련된 패션 감각을 뽐내며 밝은 표정으로 레드카펫을 밟아 “역시 최고의 스타”라는 찬사를 들었다.

권남영 강주화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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