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서 당신 모습이 보이나요

천경우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퍼포먼스에 참가시켜 자신을 응시하게 만든다. 왼쪽부터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은 프랑스 환경미화원이 그린 소중한 사람의 얼굴과 미화원의 장갑을 나란히 배치한 ‘가장 아름다운’(2016). 세 번째 사진은 우리나라 배우의 초상 사진에 그가 그린 제 얼굴을 겹쳐 놓은 ‘얼굴 속 얼굴’(2016). 성곡미술관 제공


이 가을, 문득 하늘을 쳐다보며 관성처럼 살다 놓쳐버린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작가 천경우(49)의 개인전 ‘모르는 평범함’은 화들짝 그런 순간과 마주치게 되는 ‘추남추녀(秋男秋女)’들을 초대한다.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에는 보통 사람들이 등장한다. 정확히는 그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펼치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과 영상, 설치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퍼포먼스라고 하면, 무슨 기발한 쇼를 연상하겠지만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마음이 울컥해지거나 깊이 침잠하게 된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마주하게 하는 질문을 만나기 때문이다. 작품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나는 누굴까’ ‘내게 소중한 건 뭘까’ 같은 생각이 파문처럼 번진다. 또 ‘당신이야말로 소중한 존재야’라고 등을 토닥여 주는 위로의 언어를 만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작품. 흐릿하게 찍힌 초상 사진들이 나열돼 있다. 그 위에 파스텔톤 분필로 낙서하듯 그린 얼굴 그림이 겹쳐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우리나라 젊은 배우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명상을 하듯 오래도록 눈을 감은 채 앉아있다가, 제 얼굴을 스케치했다. 느리게 그리면 제 얼굴이 달아나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장노출로 찍었다. 그리하여 익명의 얼굴처럼 된 초상 사진 위에 그들이 그린 제 얼굴을 얹어놓은 것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정체성을 찾기도 전에 유명해져 남의 역할만 해 온 그들이 안쓰러웠다.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 자신을 생각해보라’는 취지에서 한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벽면에는 닳고 닳은 장갑을 찍은 사진들이 격자처럼 진열돼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 소도시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을 섭외해 그들이 실제 사용하는 장갑을 찍었다.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장갑이다. 이는 곧 그들의 얼굴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지금 생각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평생 그림이라곤 그려보지 않아 행여 잘못 그릴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그들. 작가는 장갑과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면서도 일부러 장갑 주인이 그린 그림과 매치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커다란 벽면이 있는데, 참가자들이 지금 떠오르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1분간 음악을 들으며 써나가는 ‘천 개의 이름들’이라는 퍼포먼스다.

위무의 손길도 느낄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초청을 받아 제작한 ‘완벽한 릴레이’라는 작품은 각국의 어린이들로 하여금 올림픽 모토인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를 모국어로 쓰도록 했다.

전시장엔 이렇듯 보통 사람들, 약자들의 체취가 흐른다. 작가는 “예술이 사회의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부퍼탈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다. 전시는 오는 11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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