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장률 감독 “영화엔 일상이… 뒤죽박죽 삶과 같아” [인터뷰]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연출한 장률 감독. 주연배우 박해일 문소리와는 전작 ‘필름시대사랑’(2015)에서 함께했는데, 특히 박해일과는 ‘경주’(2014)부터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그는 “서로 익숙해지면 그 사람의 리듬이 보인다. 작업이 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박해일 문소리 주연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한 장면. 트리플픽쳐스 제공




장률(중국명 장루·56) 감독이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이런 것들이다. 리듬, 질감, 일상, 그리고 공간.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공간의 질감과 시간의 리듬을 영상 안에 담아내는 그만의 방식은 신작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역시 또렷이 이어진다.

“저는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한데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엔 믿음이 가지 않더군요. 재미있는 건, 일상적인 공간에서 찍은 영화는 낯설게 보인다는 겁니다.”

그의 작품들은 지명이 제목인 경우가 많은데, 마치 작품을 통해 여행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중국의 베이징(‘당시’) 몽골(‘경계’) 충칭(‘중경’)을 거쳐 국내로 들어와 이리(‘이리’) 두만강(‘두만강’) 경주(‘경주’) 수색(‘춘몽’)을 돌았다. 그리고 당도한 곳은 전북 군산.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정취가 남아있는 이곳이 그에게 새로운 자극을 줬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원래 목포에서 찍을 생각이었는데 장소 섭외 문제로 군산으로 변경했다.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군산은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녀의 얽히고설킨 관계 말이다. 삶이 다 그렇지 않나”라고 말했다.

장 감독의 11번째 작품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네 남녀의 엇갈린 감정선을 그린다. 전직 시인 윤영(박해일)은 한때 좋아했던 선배의 아내 송현(문소리)이 이혼했다는 얘기를 듣고 술김에 군산행을 제안하는데, 송현은 과묵한 민박집 사장(정진영)에게 끌리고 토라진 윤영은 자신을 맴도는 민박집 딸(박소담)에게 관심이 생긴다.

각각의 인물을 따라가던 영화는 종종 흐름상 어색한 장면들을 배치한다. 길거리에 전시된 일제 만행 사진이나 일본식 가옥에서는 열리는 독립운동 기념 음악회, 그리고 여러 차례 거론되는 윤동주 시인 관련 단상들. 장 감독은 “그 공간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옌볜에서 나고 자란 재중동포 장 감독은 전작들에서 그랬듯 조선족을 향한 차별적 시선을 꼬집기도 한다. 윤영은 자기 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가사도우미에게 선의를 베풀지만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중국 동포 인권을 위한 시위에 참여했던 송현은 조선족이냐는 오해를 받자 불쾌해한다.

장 감독은 이 또한 “일상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종합해보면, 역사나 정치적 관념들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런 이야기들이 모두 우리의 일상인 겁니다. 때로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자체를 잊어버려선 안 되죠.”

이 영화의 가장 특징적인 지점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시간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군산에서 벌어진 일들을 한참 보여주다 중간지점부터 두 사람이 오랜만에 재회해 인사하는 장면이 시작된다. 장 감독은 “영화는 사실이 아닌 기억을 찍는 것이다. 사실과 기억의 순서는 다르다. 실제 우리도 뒤죽박죽 살아가지 않나”라고 했다.

지난 6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연세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가르친 그는 지난 8월 한국 생활을 접고 중국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처음 교수직 제안을 수락했던 건 “고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는데, “강의에 더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오는 게 맞다”는 생각에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차기작은 ‘후쿠오카’라는 작품으로, 이미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그다음 작품은 중국에서 찍을 생각이라고. 이러다 전 세계 지역명을 딴 작품이 줄줄이 나오게 되는 건 아닐까. “그건 모르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저는 계획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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