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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신종수] 목구멍



냉면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따금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집에 가곤 한다. 평양 옥류관에서 먹어본 적도 있다. 솔직히 밍밍한 맛이어서 많이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 냉면 붐이 일었을 때는 일행들과 함께 냉면집 앞에 덩달아 줄을 서서 기다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졌다. 가을로 계절이 바뀌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목구멍’ 발언이 사실이라면 상대가 대기업 오너들이어서가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었다고 해도 대단한 모욕이다. 초대를 해놓고 식사 중인 손님에게 모욕을 주는 경우는 처음 봤다. 막말로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리선권은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면박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테이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뿐만 아니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연장자도 있었다. 심각한 결례이고 같은 유교문화권에 있는 북한 정서에 비춰봐도 패륜에 가깝다. 이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냉면을 목구멍으로 넘겨야 했던 당시 참석자들의 고충이 컸겠다. 대북 투자를 검토하려고 했다가도 기분 나빠서 안 할 것 같다.

지금은 한반도 평화나 비핵화라는 역사적인 명제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묻히는 세상이 아니다. 목구멍 발언으로 국내 여론도 좋지 않다 자유한국당이 조명균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정치공세 성격이 짙지만 조 장관의 북측에 대한 저자세가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조 장관은 “남북 관계에 속도를 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고 리선권을 옹호하기도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참석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말이 없었다고 하더라”며 진화에 나섰다. 조 장관도 “건너 건너 얼핏 들은 말”이라며 홍 대표와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것 같다. 리선권은 더이상 우리 협상 파트너로 적합하지 않다.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국내 여론에 나쁜 영향을 준 리선권 교체를 북측에 요구해야 한다.

신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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