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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모든 외교는 국내정치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모든 걸 피해갈 수 있는 단어인 ‘미묘하다’라는 말로도 설명이 잘 안 된다. 그냥 정서가 그렇다는 말밖에.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원래 전력이 약하다느니, 부상 선수가 많아서 그랬다느니 하는 변명은 통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겐 어쩔 수 없이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게 일본이다. 물론 그런 감정을 이성과 합리성으로 누르는 게 정상적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는 부적격하다고 하겠다.

그런 배타적 감정은 종종, 아니 자주 각자의 국내정치에 활용된다. 2014년 아베 신조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전향적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의 작성 배경과 과정을 검증한 것은 누가 봐도 일본 내 막강한 영향력의 극우세력을 향한 몸짓, 즉 국내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외교를 이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담화 내용을 양국의 정치적 타협물로 훼손시켰고, 국제적 논란거리로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내용 수정이라는 강경 목표를 흘렸다가 슬쩍 철회하며 한·일 간 역사전쟁을 아주 불편해하는 미국을 만족하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주지하다시피 이후 일본은 미국에 착 달라붙어 보통국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에 떨어지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독도를 전격 방문한 것도 역시 한·일 관계의 미묘함을 국내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방문 직후 지지율이 한때나마 치솟았으니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유럽연합이나 캐나다, 한국 등 동맹국들에까지 시비를 거는 건 국내 여론, 특히 지지층의 생각을 읽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 엘리트는 권력 유지를 최선의 목표로 하며 대외정책도 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사법 농단으로 늦어지긴 했지만,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최종 확정했다. 직후 우리 총리와 일본 총리의 입장 발표가 있었다. 서로 근엄하게 외교관계를 거론했다. 그보다는 각자 국내 여론을 향한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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