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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탈 쓴 소설, SNS 타고 사회 농락… 가짜뉴스 몸살 앓는 지구촌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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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짜뉴스’를 비난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입맛에 맞는 것만 믿으려 하는 각자의 심리다. 자기 가치관에 맞으면 믿고, 맞지 않으면 비판하거나 무시한다. 가짜뉴스 생산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대중의 확증편향을 이용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일단 퍼지고 나면 성향이 분명한 집단일수록 그 정보에 대한 태도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자기 신념에 부합하면 해당 정보가 거짓으로 판명 나더라도 진실로 여긴다. 오히려 팩트체크(사실검증) 작업을 벌인 이들의 결론을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는 일이 벌어진다.

최근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가짜뉴스는 과거 유행한 풍자성 뉴스나 ‘지라시’ ‘카더라 통신’류의 루머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명백한 허위사실로 구성되는 가짜뉴스는 의도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유인하고 누군가에게 타격을 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기사 형태로 작성하고 매체명과 기자 이름까지 달아 그럴싸하게 꾸며지기 때문에 좀처럼 의심하기 어렵다. 각국이 선거철을 비롯해 정치적 이슈로 뜨거울 때마다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는 지경이다. 대응책으로 각국 정부가 관련 대책을 추진하고 언론사나 관련 단체가 팩트체크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짜뉴스 범람에 더욱 객관적이고 빠른 대응을 위해 자동 팩트체크 기술까지 개발되고 있다. 이런 노력은 갈수록 정밀해지는 오도(誤導)의 칼날을 막을 수 있을까.

가짜뉴스의 부상

가짜뉴스는 사람들을 속일 의도로 전통적인 기사 형태를 갖춰 진실인 것처럼 꾸민 허위 정보다. 일종의 언론 사칭인 가짜뉴스에는 분명한 정치적·상업적 목적이 있다. 때문에 일부 진실이기도 하면서 특정 의도가 전제되지 않는 루머와 구별된다. 과거 가짜뉴스는 주로 풍자 뉴스를 일컫는 말이었다. 풍자 뉴스는 꾸며낸 이야기를 뉴스 형태로 보여주지만, 시청자를 속이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를 비판할 목적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가짜뉴스와 판이하다. 가짜임을 알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시청자는 사실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허위 정보를 유포하면서 기사처럼 꾸미는 이유는 사람들이 신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50대 남녀 108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같은 내용의 가짜뉴스라도 온라인 기사 형태로 제시하면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로 보여줄 때보다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의 가짜뉴스는 그럴듯한 언론사 제호와 바이라인(기자 이름과 이메일 주소)까지 집어넣기도 한다. 인쇄물로 유포되기도 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는 가짜뉴스가 신문 형태로 배포됐었다.

가짜뉴스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로 부상한 건 2016년 11월 미국 대선을 거치면서다. 전문가들은 당시 미 대선을 가짜뉴스로 인한 논란과 폐해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로 꼽는다. 2016년 8∼10월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미 대선 관련 가짜뉴스 20건의 공유 및 댓글 작성 수는 약 871만1000건으로 주류 언론 주요 뉴스 20건의 약 736만7000건보다 18% 많았다. 미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는 2016년 세계적으로 가장 유행한 가짜뉴스 50건 중 23건이 미국 정치 관련 내용이었다고 분석했다. 당시 가짜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호의적이거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부정적인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비슷한 시기 유럽과 남미, 동남아 지역에서도 가짜뉴스 문제가 대두됐다.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친(親)난민 정책을 공격하려는 의도의 가짜뉴스가 나돌았다.

지난해 9월 총선 직전에는 메르켈 총리가 함께 사진을 찍은 적 있는 시리아 난민이 2016년 베를린 테러 용의자라는 가짜뉴스가 확산됐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 과정에서도 당시 후보였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경쟁자 마린 르펜 후보와의 TV토론을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 해외 비밀계좌 보유설로 타격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라우나 볼드리니 하원의장의 조카가 정부 기관에 채용돼 매달 8000유로를 받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유포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2016년 대통령 탄핵 기간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뉴스의 60%가 거짓으로 나타났다.

왜 가짜뉴스를 만드나

거짓 정보가 시중에 나도는 건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기원전 6세기 비잔틴 제국에서 프로코피우스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모함하기 위해 만든 비사를 가짜뉴스의 기원으로 꼽기도 했다. 183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선정적 신문기사를 가짜뉴스의 모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당시 뉴욕선(New York Sun)지는 달에 괴생명체가 산다는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냈다. 최근 가짜뉴스는 미디어 환경이 바뀌어 정보 생산과 유통이 손쉬워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제는 풍자나 호기심이 아니라 정치적·상업적 목적이 더해지면서 더욱 악성적인 활동이 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대응이 필요해졌다.

뉴스 소비와 유통의 중심이 포털 사이트와 SNS 등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진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가짜뉴스 확산의 주요 배경 중 하나다. 미국 성인 62%가 뉴스를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접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우리나라 SNS 뉴스 이용률은 15% 수준이지만 컴퓨터와 모바일 인터넷을 통한 뉴스 이용은 73.8%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는 주로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된다. 이때 뉴스는 온라인 링크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글자를 복사해 옮기는 식으로도 전파된다. 이 때문에 온라인 뉴스는 신문과 방송 등 기존 뉴스보다 변형 가능성이 높다.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추가해 사실상 완전히 다른 뉴스로 만들어 배포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짜뉴스의 주요 목적은 특정 집단의 결집이다.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신념과 유대를 강화하고 상대 집단에 타격을 입힐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상업적 목적도 한 축으로 작용한다. 미 대선 시기에 마케도니아의 작은 도시 벨레스에서 친 트럼프 성향의 가짜뉴스를 제작하는 온라인 뉴스 사이트가 100개 이상 발견됐다. 이 도시에서 가짜뉴스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한 건 10대들이었다. 이들은 가짜뉴스로 월 4000∼1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수입원은 온라인 광고였다. 사이트에 구글 애드센스 같은 광고 프로그램을 달면 사이트 방문자 수에 따라 수익을 올릴 수 있다. 2016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광고 전공자 등이 운영하는 페이크 뉴스 ‘리버티 라이터 뉴스’는 월 최대 4만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미 NBC방송은 이를 ‘현대판 골드러시’라고 표현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가짜뉴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정치 성향과 거짓의 확산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팩트체크, 어디까지 가능할까

특정 뉴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 참과 거짓을 판정하는 팩트체크는 가장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다. 주로 언론사나 언론 관련 기관에서 운영한다. 국내에서는 일부 언론사가 해당 코너를 운영 중이고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언론사 20여곳과 함께 팩트체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신뢰가 하락한 기존 언론이 공정한 팩트체커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매체마다 팩트체크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성향이나 태도가 반영된다는 점도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 검증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일부 언론사가 수행하는 팩트체크는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상황에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때문에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자동 팩트체크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자동 팩트체크 기술은 아직 완벽한 모델이 없어 여러 모델이 활용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듀크대, 스탠퍼드대 연구진과 구글이 공동으로 개발한 클레임버스터(ClaimBuster)는 사실 검증이 필요한 문장을 자동으로 선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팩트체크 대상을 감지하는 것으로 선별된 정보에 대한 사실 검증은 사람이 수행하게 된다. 인디애나주립대 복합 네트워크 및 시스템 연구센터는 ‘지식 네트워크’라는 모델을 설계했다. 검증이 필요한 문장을 입력하면 주요 키워드 간 연결성을 분석해 실제 사실에 부합하는 정도를 점수로 제시한다. 다국적 스타트업 연구팀이 개발한 팩트마타(Factmata)는 새로운 뉴스와 정치적 발언 중 팩트체크가 필요한 문장을 선별한 뒤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과거 텍스트, 통계 수치 등과 비교 검증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구글 웹 브라우저 ‘크롬’에 설치해 사용하는 팩트체크 프로그램도 요긴하게 쓰인다. 팩트마인더(FactMinder)와 FiB가 대표적이다. 팩트마인더는 이용자가 현재 보고 있는 웹 페이지의 정보가 사실인지를 실시간 확인해 알려준다. FiB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뉴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식별한 뒤 게시물 상단에 ‘인증(verified)’ ‘비인증(not verified)’ 표시를 한다. 게시물을 작성할 때 진위 확인이 필요한 내용이 입력되면 해당 부분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하는 방식으로 경고한다. 이밖에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이 만든 트위터 전용 팩트체크 프로그램 루머렌즈(RumorLens), IMB 왓슨그룹이 만든 왓슨 앵글(Watson Angles) 등이 있다. 로이터 통신은 로이터 뉴스 추적기라는 자동 가짜뉴스 판독 모델을 활용한다.

자동 팩트체크 기술은 주로 기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비교·검증하는 방식이라 새롭게 등장한 팩트에 대해서는 진위를 확인하기 쉽지 않은 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오세욱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자동화한 팩트체킹은 수많은 내용 중 어떤 내용을 팩트체킹해야 하는지 찾거나 과거 데이터 탐색을 빠르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팩트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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