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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일 기업 불법행위 따른 위자료” 개인 배상권 인정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과 ‘표지석’의 모습. 표지석에 새겨진 한 피해자의 사진(오른쪽)이 낙서로 훼손돼 있다. 김지훈 기자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5년여 장고 끝에 내린 ‘강제징용 피해 배상’ 결론은 2012년 대법원 첫 상고심 결론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피해자들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한 판단에서 “불법적 식민지배와 직결된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 위자료는 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면서 결론은 상고 기각으로 수렴됐다.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중 11명은 여운택씨 등의 청구권이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며 이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성격에 있었다. 이들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한·일 양국의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강제징용 피해자(원고)들이 청구한 것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한 불법행위에서 비롯된 피해에 대한 위자료 성격으로 봤다.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위자료는 협정이 해결한 채권 채무관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당시 협정문에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 일본이 제공하기로 한 3억 달러가 한국 정부 요구액에 한참 못 미친 적은 금액이었던 점 등도 판단의 이유가 됐다.

다만 일부 보충 의견들이 제시됐다. 이 사건의 주심인 김소영 대법관과 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은 된다”면서 “대한민국 외교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해 여씨 등은 국내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별개 의견을 밝혔다. 일본의 자국 내 조치로 청구권이 일본 내에서 소멸하게 돼도 한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할 뿐 여씨 등이 한국에서 소송을 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반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된다”며 배상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로 인해 개인청구권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고 밝혔다.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해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면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대신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어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는 국가가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일 정부가 가져왔던 입장과 거의 같은 의견이다.

과거 1, 2심 판결에서 패소 근거였던 ‘일본 판결의 승인 여부’에 대해서는 대법관들은 일치된 의견으로 “한반도 침략행위를 전제로 한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한국의 사회질서에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또 이 소송의 피고인 신일철주금이 일제 강점기 당시 구 일본제철과 사실상 같은 회사여서 여씨 등이 소송을 제기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대법원이 사실상 같은 결론을 다시 내리는 데는 5년2개월이 걸렸다. 그 기간 ‘양승태 사법부’가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하던 박근혜정부의 의견을 받아 의도적으로 재상고심에 개입해 지연 전략을 폈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논란을 낳았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던 7월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겼고 3개월 만에 결론이 내려졌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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