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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내려진 판결 “일 기업, 강제징용 배상하라”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94·오른쪽)와 고(故)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가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최종 승소판결을 받은 뒤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춘식, 김규수, 여운택, 신천수씨는 1941∼43년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에 강제징용됐다.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혼자 승소 소식을 듣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恨)스러운 배상 요구가 21년 만에 우리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대법원은 “불법적 식민지배와 직결된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 위자료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배상 책임의 근거를 명시했다.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요구할 근거 판례가 확립됨에 따라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청구할 길이 열릴 전망이다. 그러나 배상 책임을 부인해 온 일본 정부가 즉각 유감을 표하며 강력 반발하고 나서 한·일 양국 관계 냉각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일제 강점기였던 1941∼43년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징용됐던 이춘식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원심인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은 2013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 각각 1억원의 위자료와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같은 결론이 대법원 재상고심을 걸쳐 다시 나오는 데 5년이 걸린 것이다. 박근혜정부와 당시 양승태 대법원이 의도적으로 이 사건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상황이다.

이번 선고는 2005년 2월 처음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8개월 만에 이뤄졌다. 원고 중 이미 세상을 떠난 여운택·신천수씨가 1997년 처음 일본 법원에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지는 21년 만이다. 그 사이 소송 당사자 4명 중 올해 94세인 이씨만 홀로 남아 이날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여성근로정신대 피해 사건 등 유사 소송 재판도 앞으로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소송에 나서지 못했던 피해자와 유족의 추가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는 분위기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일본 정부는 배상판결 시 외교분쟁화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당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며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담화를 통해 “(판결은) 매우 유감스러우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며 “일본 기업들에 부당한 불이익을 주고 한·일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집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외무성은 대법원 판결 직후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판결 직후 외교부·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과 비공개 회의를 갖고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이 총리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관계부처 및 민간 전문가 등과 함께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피해자들의 상처가 조속히 치유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면서 “정부는 한·일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조민영 장지영 권지혜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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