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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트럼프’ 당선, 중남미의 좌파 ‘핑크 타이드’ 저문다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선 결선투표를 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 있는 모습.
 
보우소나루의 브라질 대선 승리가 확정된 28일(현지시간) 지지자들이 리우데자네이루의 보우소나루 자택 앞에서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한 여성 지지자는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브라질에서 28일(현지시간) 실시된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극우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가 승리했다. 보우소나루의 대통령 당선으로 중남미 주요국들은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가 혼재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좌파 정권의 물결)’의 퇴조는 큰 흐름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브라질 결선투표 개표 결과 사회자유당(PSL) 소속인 보우소나루 후보가 55.1%의 득표율을 기록, 44.9%를 얻은 좌파 노동자당(PT)의 페르난두 아다지를 여유있게 눌렀다.

보우소나루는 승리 연설을 통해 “브라질을 위대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바꾸겠다”며 “헌법과 민주주의, 자유를 수호하는 정부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포퓰리즘, 좌파 극단주의에 계속 기웃거릴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내년 1월부터 4년 임기를 시작한다.

보우소나루의 당선으로 남미 국가에선 좌·우파 정권이 비슷하게 균형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남미의 양대 경제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파의 입김은 더욱 세질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보우소나루는 대선 유세 기간에 남미 국가 간 ‘자유주의 동맹’을 구성하기 위해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등 우파 정상들과 회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남미에서 우파 집권 국가끼리 결집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1995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4개국을 중심으로 출범한 관세동맹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2008년 10개국이 참여한 ‘남미판 유럽연합’ 남미국가연합(UNASUR)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그동안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이 메르코수르를 통해 좌파정권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해 왔다. 남미국가연합은 이미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페루 파라과이 등이 탈퇴 의사를 밝힌 상태라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보우소나루는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인 데다 거친 언행으로 연일 논란에 휩싸여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린다. 육군 대위 출신인 그는 과거 브라질 군부독재를 찬양하고 좌파 정치인에 대한 고문을 옹호해 거센 비판에 부딪힌 바 있다. 또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는 보우소나루를 “중남미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우소나루가 당선된 이유는 브라질 국민들이 강력한 사회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동안 좌파 노동당의 부패와 잇따른 실정으로 브라질 국민 사이에서는 ‘좌파 정부 심판론’이 힘을 얻었다.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2015년부터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헤알화 가치는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브라질 공공치안포럼에 따르면 지난해 브라질에서 발생한 총 살인 건수는 6만3800여건으로 유럽 국가 평균의 30배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부패와의 전쟁을 위해 경찰권과 총기 소유조건 완화 등을 주장하는 보우소나루가 브라질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표에 참여한 브라질 시민 알렉산드르 마키엘(44)은 “이렇게 살 순 없기 때문에 보우소나루를 뽑았다”며 “그는 변화를 이룰 용기를 가진 유일한 후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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