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통한 인류 문명 해석’ 구상 10년, 실행에 3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사진전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은 사진 전문 큐레이터 윌리엄 유잉이 3년 이상 걸려 준비한 것이다. ‘졸속 전시’가 관행이 된 한국 미술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에드워드 버틴스키의 ‘제조 17번, 중국 지린성 더후이시 데다 닭 처리 공장’(2015·왼쪽 사진)과 올리보 바르비에리의 ‘특정 장소_멕시코시티 11’(2011).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2개국 135명의 사진 작품 300여점. 엄청난 물량 탓에 ‘혼란의 전시’가 될 거라는 예상은 기우였다. 구상에 10년, 실행에 3년을 들여 꼼꼼히 기획한 전시는 확실히 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명-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전(이하 문명전) 얘기다. 미국 사진전시재단과 공동 주최한 것으로, 전시의 전범을 보여준 듯하다.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한 ‘인간가족’전 이후 동시대 문명을 조망하는 세계적 규모의 첫 사진전이라고 미술관 측은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함께 전시를 통해 이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탁월하게 조화를 이뤘다.

문명전은 199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구축되어온 지구 문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한다. 건드리기 힘든 거창한 주제임에도 소주제를 설득력 있게 분류함으로써 전시가 길을 잃지 않는다. 전시는 인류 문명을 8개 섹션으로 쪼개 보여준다. 도시 문명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벌집’,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관계 맺기를 살펴보는 ‘따로 또 같이’, 자본·석유·자동차 등 문명이 만든 움직임을 따라가는 ‘흐름’, 광고·마케팅·프로파간다인 ‘설득’, 권력의 행사 방식을 보여주는 ‘통제’, 과잉 소비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파열’, 여가 문화를 담은 ‘탈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다음’ 등이 그것이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외국인 수장인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스위스 출신의 사진 전문 기획자 윌리엄 유잉(전 로잔 엘리제 사진미술관장)과 의기투합하면서 이뤄졌다. 70대인 관록의 큐레이터 유잉은 최근 방한해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10년 전부터 구상한 전시다. 사진을 통해 인류 문명을 해석하고 싶었다”고 했다. ‘왜 사진이냐’는 질문에는 “사진은 설치나 회화처럼 모호하지 않다. 대중은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시를 풀어내는 방식도 치밀하다. 전시장 들머리부터 ‘문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토마스 스트루트가 고대 페르가몬 유적이 전시된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을 찍은 사진과 리하르트 데 차르너가 고대 이집트 왕의 무덤을 전봇대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고대 문명이 현재에 어떻게 전유되는지, 또 어떻게 무관심 속에 공존하는지 보여준다. 격자 작품을 연상시키는 미국 작가 솔 르윗의 가설물이 설치된 메인 전시장은 어느 방향에서든 사진 작품들이 보여 소주제들이 서로 충돌하고 섞이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기분을 준다. 예컨대 에드워드 버틴스키의 중국 지린성 닭 처리 공장 사진에선 인류의 탐욕이, 올리보 바르비에리의 도시 사진에선 도심에 사는 미적 즐거움이 느껴진다. 독일 작가 칸디다 회퍼, 중국 작가 왕칭송, 한국의 KDK(권도균), 정연두, 노순택 등이 참여한다.

전시의 화룡점정은 도록이다. 도록 첫 페이지는 ‘문명이 문화를 파괴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은 오늘날의 인류의 의무이다’라는 문장과 함께 프랑스령 기아나 기지에서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을 담은 미하헬 나하르의 ‘궤도 상승’ 사진이 장식했다. 마지막 장에는 칸디다 회퍼의 장크트 플로리안 아우구스티노 수도원의 도서관 사진이 실렸다. ‘문명은 축적된다’는 문장과 함께. 한국 전시를 시작으로 중국 베이징 올렌스 현대미술센터(2019년),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2020년), 프랑스 마르세유 국립문명박물관(2021년) 등 10여개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수출하는 전시다. 내년 2월 1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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