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연예기획사 횡포, 방지책은?


 
밴드 더 이스트라이트 멤버인 이석철군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듀서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연습생들이 방송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매니저가 윽박지르며 다그친다. “야, 카메라 들어오면 네 얼굴 나왔을 때 좀 따먹어야 될 거 아냐.” 이것은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데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2014)에 나온 장면이다.

매니저의 지시는 앵글에 잡혔을 때 최대한 멋진 표정을 지으라는 의미다. 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긴 하지만 성적인 뉘앙스가 담긴 표현이나 고압적인 태도는 일부 연예계 종사자의 상스러운 모습을 확인하게 만든다. 소속사 직원들이 연습생들을 대할 때 얼마나 인격적인 존중이 부족한지는 이 행동 외에 다른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사실 이 영화에 담긴 모습은 약과였다. 최근 6인조 보이 밴드 더 이스트라이트의 이석철(16)군은 2015년부터 소속사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해왔다고 폭로했다. 가해자들은 지각, 연주 실력 부족, SNS 활동 등 별별 이유로 수시로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때렸다고 한다. 멤버들이 10대이기에 대중이 받은 충격과 분노는 매우 컸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들 프로듀서를 엄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물은 닷새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한국 연예 기획사의 부끄럽고 참담한 민낯이다. 이 사건은 권력을 앞세워 소속 연습생이나 아티스트에게 횡포를 일삼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함을 깨닫게 만든다. 아무리 기량을 키우고 긴장감을 불어넣을 목적이라고 해도 사납게 말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비인간적 행위다. 미디어라인은 이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고 회사를 소개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구성원들은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지도가 있는 회사에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감안하면 작은 무명 기획사들의 사정은 더 심할지도 모른다.

더 이스트라이트 멤버들처럼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나이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10대에 가수로 데뷔한 아이들이 많다. 이들은 가수가 되기 위해 매일 상당한 시간을 회사가 마련한 연습실이나 숙소에서 보낸다. 따라서 기획사는 어린 연습생에게 제2의 믿을 만한 학교나 가정이 돼줘야 한다. 지성을 기르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살뜰히 지도해야 한다. 어른으로서 마땅한 책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제공하는 기획사는 거의 없다.

그동안 연예인 지망생이나 소속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한 기획사의 착취, 성추행 같은 문제는 끊이지 않고 일어났었다. 이를 방지하고자 2014년 7월부터 연예 기획사 등록제가 시행됐다. 이전까지는 국가에 신고만 하면 회사를 열 수 있었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기획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관계자들은 소양이 부족하고 미덥지 못한 사람들의 업계 유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을 테다.

안타깝게도 더 이스트라이트의 피해 사례가 말해 주듯 까다로운 개업 절차가 완벽한 방어막이 되진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악인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때문에 전담 인원을 꾸려 적극적으로 주기적인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 절실하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17조나 18조에 이 업무가 명시돼 있지만 거의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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