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한 명 눈맞춤·악수… “긍정적 감정 유도”

영국 국립발레단 건강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대니엘 틸 강사(맨 오른쪽)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열린 ‘댄스 포 디멘시아 강사 양성 워크숍’에서 치매 환자 치료를 위한 무용을 수강생들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최현규 기자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하 센터) 1층 스튜디오. 초청 강사인 영국 국립발레단 건강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대니엘 틸(32·사진)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수강생들이 스페인 춤곡에 맞춰 스카프를 흔들며 플라멩코를 추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센터가 전날 개최한 ‘댄스 포 디멘시아(치매 환자를 위한 무용)’ 국제심포지엄의 일환으로 마련한 워크숍이었다. 은퇴 무용수뿐 아니라 현역 무용수들까지 참여해 열기가 뜨거웠다. 이들은 영국에서 실제 치매 환자에게 적용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센터는 은퇴 무용수들의 재교육과 인생 2막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설립된 기관이다.

틸 강사는 공이나 천 등 소품을 사용하면 춤 동작을 끌어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공을 가지고 하면 긴장감을 낮추고 모두가 재밌게 참여하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대 가운데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고립감을 느끼는 치매 환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지요.”

수강생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소품을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을 묻는 질문에는 “최악의 경험이 있었다”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달걀 모양의 소품을 진짜 달걀인 줄 알고 삼키려 한 환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 초록, 파랑 등 원색을 칠해 혼동하지 않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치매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4700만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춤이 어떻게 치매 환자를 도울 수 있을까. 운동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어진 인터뷰에서 틸 강사는 “치매환자는 춤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며 “이는 춤이 촉각 청각 시각 등 훨씬 다양한 감각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춤 동작을 선보일 때는 일부러 ‘쉭∼’ ‘훅∼’ 하는 등 소리를 내 특정 동작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치매 환자의 경우 기억력 감퇴 탓에 밖으로 나가기를 꺼리는 등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틸 강사는 “춤은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라며 “치매 환자들이 춤을 추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구나, 내가 이해받을 수 있구나’하는 긍정적인 감정과 희망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춤이 치매 개선에 끼치는 효과를 묻자 다소 신중하게 답했다. 손을 떠는 증상이 개선되는 파킨슨병처럼 분명하게 데이터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 환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환자는 수업이 시작되면 고개를 푹 숙인 채 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에 시종 움츠린 자세로 앉아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랬던 그 환자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표정이 환해지고 점점 몸을 폈다”며 “이런 게 개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수업을 할 때는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악수를 나누는 등 환영받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신경 쓴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춤을 통해 치매 환자나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이 1980년대 커뮤니티 댄스의 일환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용은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한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며 끝을 맺었다.

틸 강사는 영국 국립발레단, 로열발레단 등 여러 무용단에 소속돼 파킨슨병 환자, 치매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용해오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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