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다 알바’ 한을 지닌 여인들, 그들의 강렬한 얘기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한 장면. 이 공연 티켓은 예매 오픈 2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정영주는 “배우 생활 25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다. 내가 방탄소년단(BTS)이 된 줄 알았다”고 웃었다. 우란문화재단 제공




3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사다리꼴의 무대. 그 위에는 10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붉은 조명 아래 선 여성은 육중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이어 등장한 9명의 배우들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일정한 리듬을 만드는데, 이국적인 악기 선율이 어우러지며 열정적인 플라멩코가 시작된다.

24일 개막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시종 이토록 강렬하다. 이 공연의 특기할 만한 지점은 10명의 출연진 전원이 여성이란 점이다. 배우들은 격정적인 안무와 노래로 열정과 희망을 표현하는데, 내면에 품은 욕망과 그 욕망을 숨겨야 하는 절망 그리고 그 절망을 받아들였을 때의 체념까지 그려나간다.

공연은 1930년대 스페인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남편을 여의고 가장이 된 베르나르다 알바(정영주)가 다섯 딸들을 강압적으로 통솔하면서 예기치 않은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스페인의 시인 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했다.

연출을 맡은 구스타보 자작은 개막 전날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에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이 작품의 주제는 한국의 ‘한(恨)’의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작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는 게 중요했다”며 “대본 분석 단계부터 배우들과 원작을 함께 읽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베르나르다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남성 위주의 세계에서 비롯된 비극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두 번의 결혼에서 남편에게 박해를 받으며 베르나르다가 배운 건 폭력과 억압의 방식이었다”며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어 온, 대물림된 폭력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러닝타임 100분간 빈틈없이 극을 채우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베르나르다에게 억압받는 다섯 딸 역은 정인지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환희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베르나르다의 노모 마리아 호세파 역은 황석정이 맡았다.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하녀 역에는 이영미 김국희 김히어라가 합류했다.

베르나르다 역의 배우 정영주는 “여자 배우만 10명이 나오는 공연은 지금껏 없었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 이제야 시작되는 것 같다”면서 “우리는 그 사명감 하나로 뭉쳤다. 이제는 여성들이 직접 말하고 용기 내야 하는 시간이 오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이어 “‘여자의 이야기’로 한정 짓기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시켜 봐주시면 좋겠다”면서 “그저 ‘예쁜 여배우들’이 아니라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배우 10명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기하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공연을 보여드리겠다”고 자신했다. 다음 달 12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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